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2화

권예진은 가장 빠른 속도로 골목길 끝을 향해 달렸다. 불과 수십 미터였지만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숨 가쁘게 달리던 그때 갑자기 뒤통수에 통증이 밀려오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건달은 기절한 권예진을 발로 걷어차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년. 계속 도망쳐봐, 어디.” 소녀가 건달에게 지시했다. “옷을 찢어버려. 사진 좀 찍어놓아야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나대지 못하지.” “그만두지 못해?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 그때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 소리와 함께 흰색 스포츠카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화들짝 놀란 건달들은 기절한 권예진을 내버려 두고 허둥지둥 옆으로 피했다. 정우현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고 차에서 내려 권예진을 안아 올렸다. “프랭크, 빨리 외투 가져와.” 정우현의 매니저 프랭크는 재빨리 뒷좌석에서 검은색 정장 재킷을 꺼내 건넸다.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어? 기자와 팬들이 번갈아 달려든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엔 목숨까지 잃을 뻔하다니.’ “정우현?” 극성팬들은 권예진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실물 보게 되어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꺅. 사랑해요, 오빠.” 정우현은 권예진을 안고 차에 타려다가 차가운 시선으로 건달 같은 그들을 쏘아보았다. “너희들이 내 팬이라고?” “네. 우리 모두 오빠 팬이에요.” 품에 안겨 있는 권예진을 내려다보던 정우현은 자책과 안타까움에 휩싸였다. ‘나 때문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만약 서둘러 돌아오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소녀들은 정우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냥 넘어가는 줄 알고 저마다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비켜.” 정우현이 호통치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 팬이라고? 남을 괴롭히는 게 너희들이 날 좋아하는 방식이라면 미안하지만 난 너희들 같은 쓰레기 팬은 필요 없어. 내 눈 더럽히지 말고 당장 꺼져.” 그러고는 옆에 있는 매니저에게 말했다. “경찰에 신고해서 싹 다 잡아넣어.” 흰색 스포츠카는 해경시의 최고 병원을 향해 쏜살같이 질주했다. 해경시 교통 체증이 심해 지나가는 사거리마다 대부분 빨간불이었다. 정우현은 초조한 마음에 핸들을 꽉 잡았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었는데도 앞차가 출발하지 않자 시내에서 경적을 울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냅다 경적을 울렸다. 빵. 귀청을 째는 듯한 경적 소리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권예진이 얼굴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량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옆에서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정우현?” “깼어?” 정우현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급히 물었다. “어디 불편한 데 없어? 지금 바로 병원에 데려다줄게.” 권예진은 뒷머리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고 몸에도 땅바닥에 쓸린 상처가 몇 군데 있었다. 기절하기 전에 일어났던 상황이 눈앞에 스치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병원에 갈 필요 없어. 근데 왜 네 차에 타고 있는 거지? 촬영하러 간 거 아니었어?” 정우현은 공인이었다. 밥 한 끼 같이 먹은 것만으로도 열애설 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병원에 간다면 혼전 임신이라느니, 뱃속 아이 때문에 결혼한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정말 안 가도 되겠어?” 정우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응. 내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어. 게다가 나 의술도 알고 있잖아. 제작진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저 앞에서 내려줘. 택시 타고 가면 돼.” “감독님께 촬영 내일로 미루겠다고 말씀드렸어.” 정우현은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 나한테 말하기 꺼리는 것 같은데? 대체 뭐가 걱정돼서 그래?” “그게 아니라 난...” “데려다줄 테니까 어디 사는지 말해.” 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부드러운 말투 속에 강압적인 느낌이 담겨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우리 집에 데려가는 수밖에 없어.” 마침 앞쪽에 사거리가 있었다. 병원에 가려면 직진해야 했지만 갈 필요가 없어졌기에 곧바로 우회전했다. 이런 모습으로 오아시스에 돌아가는 건 확실히 적절하지 않았다. 차라리 정우현네 집에 가서 직접 상처를 치료하고 백화점에 들러 똑같은 옷을 사 입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에 대해서는 해명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공호열이 믿어줄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게 대체 무엇일까? 20분 후 차가 블루 베이에 도착했다. 블루 베이는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었고 주택들 모두 이백 평에서 삼백 평에 달하는 고급 주택이라 가격도 엄청났다. 정우현은 차에서 내린 다음 조수석으로 가서 권예진을 안아 올리려 했다. 권예진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거절했다. “괜찮아. 혼자 걸을 수 있어.” 별장 안으로 들어가자 정우현은 현관 신발장에서 슬리퍼 한 켤레를 꺼내 권예진의 발치에 놓았다. “집에 여성용 슬리퍼가 없어서 새것 줄게. 이거라도 먼저 신고 있어.” 그러고는 흰색 캐시미어 카펫 위에 한쪽 무릎을 꿇더니 그녀가 신은 가죽 숏부츠를 잡고 신발을 벗겨주려 했다. 그 모습에 당황한 권예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신을게.” 그녀는 재빨리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남성용 슬리퍼가 커서 그녀의 발이 더욱 작아 보였다. 정우현은 잠깐 멈칫했다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다. “몇 년 사이에 키가 많이 안 컸나 봐? 발은 여전히 작아.” “발이 작아야 어떤 신발을 신어도 예쁘지.” 권예진이 또 물었다. “혹시 구급상자 같은 거 있어? 몸에 약 좀 바르려고.” 그가 구급상자를 가져오자 권예진이 받으면서 말했다. “부탁할 일이 하나 더 있어.” “뭔데?” 정우현 때문이 아니었더라면 권예진이 다칠 일도 없었다. 부탁 하나가 아니라 백 개라도 들어줄 수 있었다. “이 옷 더는 못 입을 것 같아.” 그러고는 정우현에게 은행 카드 한 장을 건넸다. “똑같은 거로 하나 사다 줘.” 그는 카드를 받지 않았다. “돈 줄 필요 없어. 매니저한테 사다 달라고 할 테니까 먼저 약 바르고 있어.” 말을 마친 그는 휴대폰을 꺼내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기 전에 권예진은 은행 카드를 넣고 구급상자를 든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약 어디 가서 바르면 돼?” 정우현이 게스트룸을 가리켰다. 30분 후 매니저가 G사 로고가 찍힌 쇼핑백을 여러 개 들고 정우현의 집에 도착했다. “형, 요구대로 다 사 왔어.” “거기 놓고 가면 돼.” 정우현은 소파에 앉아 고개도 들지 않고 아이패드로 기사를 확인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들이 왜 이래? 죄다 터무니없는 헛소리만 써놨잖아.’ 다행히 권예진의 얼굴이 제대로 찍히지 않아 삶에는 크게 영향이 없을 것이다. 기사를 다 봤을 때 매니저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정우현은 옷 하나를 집어 들고 게스트룸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똑똑. 그런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시 두드린 후 문에 대고 물었다. “예진아, 약 다 발랐어?”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설마...’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 그는 황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