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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권예진은 처음 해보는 카드게임이라 룰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첫판부터 졌다. 다행히 학습 능력이 뛰어나 두 판을 연달아 진 후에 룰을 이해했다. “두 판이나 연달아 졌는데 괜찮아?” 장영희가 웃음을 머금고 쳐다보자 권예진은 덤덤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괜찮아요.”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온혜영이 빈정거렸다. “예진 씨는 정말 사모님이 될 팔자인가 봐. 두 판이나 졌는데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호열이 돈이 많긴 하지만 하늘에게 뚝 떨어진 건 아닐 텐데.” ‘돈? 무슨 뜻이지?’ 순간 당황한 권예진이 장영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큰어머니, 돈을 걸고 하는 건가요?” 온혜영이 웃을 듯 말 듯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돈이 걸려야 재미있지. 한 판에 2천만 원인데 설마 그 정도 돈도 없어?” ‘한 판에 2천만 원? 두 판이면 4천만 원인데.’ 그만한 돈은 정말 없었다. 어쩐지 카드게임을 하자고 하더라니. 한 사람은 다정한 척하고 다른 한 사람은 못된 척하면서 그녀를 망신당하게 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권예진이 당황해하자 온혜영은 드디어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웃었다. “형님, 예진 씨 사정을 아직도 모르세요? 2천만 원이 아니라 20만 원도 내놓지 못할걸요?” “지면 제가 드릴게요.” 바로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훤칠한 키의 남자가 들어왔다. 공호열은 권예진의 뒤로 다가가 의자 등받이에 두 손을 얹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고는 실눈을 뜨고 권예진 앞에 놓인 칩을 힐끗 보며 물었다. “많이 잃었어?” 권예진이 대답했다. “4천만 원 잃었어요.” “괜찮아. 내가 내줄게.” 권예진이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너무 가까운 탓에 입술이 그의 차가운 얼굴에 닿을 뻔했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동시에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운이 지독하게 없었고 늘 재수가 없었다. 하여 이길 거라는 기대 따위 애초부터 하지 않았지만 돈을 너무 많이 잃고 싶진 않았다. 어쨌거나 공호열의 돈이었으니까. 온혜영의 말처럼 공호열에게 돈이 많다고 해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공호열의 행동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세 사람 모두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 권예진은 잠깐 고민한 후 카드 한 장을 버리려 했다. 그런데 그때 패를 훑어보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 이긴 것 같은데요?” 그녀는 패를 공개하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정말 이겼네? 호열이가 응원해주니까 역시 다르구나. 패가 다 좋아졌어.” 장영희는 권예진의 패를 힐끗 쳐다보고는 공호열의 표정을 살폈다. 공호열의 시선이 권예진에게 향했다. 눈웃음을 지으면서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그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공호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한 판 이겨놓고 이렇게 좋아한다고?” 권예진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깜빡이면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이렇게 운이 좋은 게 처음이에요.” ‘나한테도 행운이 찾아왔어. 혹시... 이 남자 때문에?’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 그의 몸에서 풍기는 나무 향과 그 속에 섞인 특유의 호르몬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다. 공호열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계속할 거야?” 권예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요. 볼 일 다 끝났어요?” “응. 가자.” “예진 씨...” 온혜영이 뭐라 하려던 그때 공호열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둘째 큰어머니.” 키가 188cm나 되는 그가 테이블 옆에 서서 내려다보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그가 이런 눈빛으로 쳐다볼 때면 공씨 가문의 어른들조차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온혜영 또한 의자에 앉은 채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방 전체에 아주 작은 숨소리만 감돌았다. “호열아.” 연정란이 적절한 타이밍에 입을 열어 긴장된 분위기를 깼다. “곧 점심시간이라 네 둘째 큰어머니가 예진 씨랑 밥이라도 같이 먹고 싶어서 그런 건데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2천만 원은 내 앞으로 해둬. 둘째 형님, 젊은 애들은 바쁘니까 우리끼리 계속하죠.” 연정란은 화제를 돌리면서 카드를 섞었다. 공한무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다. 연정란은 공씨 가문의 셋째 아들과 결혼했기에 온혜영을 형님이라 불러야 했다. 하지만 현재 공씨 가문의 가주는 공호열이었고 천재적인 재능과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연정란은 셋째였지만 아들 덕에 최애순 다음으로 발언권이 있었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던 장영희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동서 생각에 호열이랑 예진 씨 지금 무슨 관계인 것 같아? 동서라면 호열이를 가장 잘 알 거 아니야.” “권예진은 정말 여우 같은 여자예요. 예전에 산에 있을 때부터 행실이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온혜영이 이어 말했다. “다들 봤죠? 하룻밤 사이에 호열이가 저렇게 감싸고도는 걸 보면 어젯밤에 아주 제대로 구워삶았나 봐요.” 장영희는 믿지 않는 척했다. “그럴 리가 없어. 호열이는 항상 이성적이고 여자한테 관심이 없었잖아.” “호열이가 사업은 잘해도 연애 쪽으로는 아무것도 몰라요. 얍삽한 구석도 없고. 안 그러면 김다윤이랑 벌써 결혼했겠죠. 촌구석에서 굴러먹던 권예진한테 기회가 갔겠어요?” 온혜영이 조리 있게 말을 이어갔다. “어휴. 호열이 앞으로 고생 좀 하겠네요.” “동서 말이 일리가 있어.” 장영희는 줄곧 말이 없던 연정란에게 말했다. “동서, 예비 며느리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 연정란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 제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거예요. 내가 살아있는 한 절대 우리 집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할 겁니다.” ... 할머니와 인사한 후 권예진은 공호열과 함께 본가를 나섰다. 차에 탈 때까지도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여전히 기쁨에 젖어 있는 권예진을 돌아보던 공호열이 혐오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면서 차갑게 말했다. “할아버지라는 방패막이가 있다고 해서 네 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 아까 네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은 건 남들이 공씨 가문의 미래 안주인을 거짓말이나 하는 형편없는 여자로 보는 게 싫었을 뿐이야.” “알아요.” 권예진이 시선을 늘어뜨렸다. “알면 쓸데없는 잔머리 굴리지 마.” 공호열이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공씨 가문의 안주인이 그저 장식품이라고 해도 적어도 품위를 잃진 말아야지.” ‘장식품...’ 순간 마음이 저릿한 권예진은 눈빛마저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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