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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강태훈의 정지 버튼

그가 정말 술에 취한 건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취한 사람이라기엔 그녀를 번쩍 안아 침실까지 데려올 만큼 제정신처럼 보였고 취하지 않았다기엔 방금 전, 마치 철부지 소년처럼 다급하고도 서툰 그의 모습이 너무도 낯설었다. 평소의 냉철하고 침착한 강태훈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품 안에 안긴 채로, 허리를 휘감은 그 팔의 힘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 그의 쇄골 위에 새겨진 문신이 눈에 들어왔고 하윤슬은 망설임 없이, 본능처럼 문신 위를 세차게 물었다. “미안해요... 나...” “대표님, 오늘은 이게 마지막이에요. 약속해줘요...” 숨을 고르듯 가라앉은 목소리에 간절함과 애교가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강태훈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게 끝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떼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본 순간, 하윤슬은 마음속 깊이 외쳤다. ‘됐어. 아킬레스건을 찾았어.’ 방금 그녀가 문신을 문 건 단순한 반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 깊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그 여자’를 끄집어내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 몸부림은 효과를 냈다. 그가 마침내 그녀를 놓아준 것이다. 강태훈이 샤워를 하러 들어간 사이, 하윤슬은 재빨리 옷을 주워 입고 노트북을 꺼내 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짙은 먹색 실크 가운을 걸친 채 욕실에서 나온 강태훈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달려갔다. “하영 그룹 실사 자료, 아예 새로 준비하려고요. 내일 담당자랑 미팅도 잡았고 계약서도 조금 전에 다시 작성했어요. 특히 위약 조항은 더 강하게 넣었고요. 대표님,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으세요?” 단숨에 다시 ‘업무 모드’로 돌입한 그녀는 연신 ‘대표님’을 부르며 마치 비서처럼 정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강태훈은 젖은 머리칼을 몇 번 털어내며 짙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아까는 힘들다더니?” 그 말뜻을 알아차린 그녀는 입꼬리를 굳게 당기며 민망하게 웃었다. “아, 그건... 그때는 진짜 그랬는데...” “비서가 저녁 가져왔을 거예요.” “네? 지금요?” “먹으면서 얘기하죠.” 그가 등을 돌려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윤슬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분명 아까 회식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저녁을 시켜?’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 역시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기에 오히려 잘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강태훈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향한 그녀는,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순간 말을 잃었다. 누가 봐도 일반인은 감히 상상도 못 할 해산물과 고급 요리들이 식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먹어요. 마늘은 안 넣었으니까.” 그가 조용히 눈짓하며 식사를 권하더니, 손으로 새우를 집어 들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녀는 그의 손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차분하게 뻗은 손끝과 길고 단정한 손가락은 마치 정제된 조각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차가운 듯 강인한 기운이 감도는 남자답고 세련된 손이었다. ‘진짜 이 남자한테는 단점이란 게 없는 건가?’ “대표님도 마늘 안 드세요?” 그녀의 질문에 강태훈은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몇 초 뒤에야 가볍게 대답했다. 정말 허기졌던 하윤슬은 더 이상 체면 같은 건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괜히 아는 척하며 조심스럽게 먹는 게 오히려 더 어색했으니까. 그녀는 조용히 얼굴을 숙이고 식사를 이어가다가, 문득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손이 멈칫했다. 강태훈이 정성스레 발라낸 새우를 전부 그녀의 그릇에 담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대표님?” “어서 먹어요.” 그는 그녀의 놀란 눈빛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태연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선 계약서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요. 장부에 남아 있는 현금 흐름이 실제 투자액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죠. 예를 들어 협의하에 외부 차입금 대안을 설정하거나, 본사 쪽에 대출 형식으로 요청해서 자금을 융통하는 방법도 있어요. 그래야 프로젝트 재개도 가능하고요.” 그 말에 하윤슬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당장이라도 신청서를 쓰러 일어나는 찰나, 강태훈의 단단한 손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시선은 점점 뜨겁게 달아올라 그녀의 숨을 멎게 했다. “힘이 남아도네요?” 그녀는 말문이 막혀, 쉰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까... 분명 약속했잖아요...” 그러자 강태훈은 태연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요? 난 대답한 적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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