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위독한 어머니

비로소 수습을 마친 하윤슬은 방으로 돌아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번 출장은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지만 걱정되는 건 진성호의 분노만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남자의 얼굴을 애써 떨쳐내려 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괴로워하던 중,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이 갑자기 다급하게 울려댔다. 서둘러 다가가 화면에 뜬 병원 번호를 보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고 뻗은 손가락마저 덜덜 떨렸다. “여보세요? 하윤슬 씨? 방금 어머님께서 심장병이 갑자기 발작하셔서 상태가 매우 위급합니다. 지금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니 빨리 와주세요!” 하윤슬은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러나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곧바로 항공권을 변경했다. 비행기에 오른 뒤에야 진성호에게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강주하에게 부탁할 생각이 났다. 광현시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거의 지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고, 마침 어머니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중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창백한 안색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실패했다. 결국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새하얀 침대 시트를 적셨다. “울지 마...” 정선희가 힘겹게 눈을 뜨고 딸의 눈물을 닦아주려 팔을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손을 잡아줄 힘조차 없었다. 하윤슬은 서둘러 얼굴을 닦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 “엄마, 나 안 울었어요. 눈에 먼지가 들어갔나 봐요. 의사 선생님이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시래요.” 정선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담당 주치의가 병실로 들어와 하윤슬을 따로 불러냈다. “선생님, 엄마가 왜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한 거죠? 상태가 꽤 안정적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저희도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그동안 치료를 계속 미루기만 해온 상태였습니다.” 양 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오늘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해요.” 하윤슬이 곧장 물었다. “수술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일단 2억 정도 준비하세요. 수술부터 먼저 하면 후속 치료는 그렇게 급하진 않거든요.” 말이 2억이지, 하윤슬에게는 몇 년을 일해야 겨우 모을 수 있는 큰돈이다. 그때가 되면 이미 모든 게 늦었을지도 모른다. “생각 좀 해보세요.” 말을 마치고 양 의사는 자리를 떴다. 하윤슬은 홀로 텅 빈 병원 복도에 서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퍼지는 차가운 공간에서 아주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주하의 전화가 올 때까지도 같은 자리에 멈춰 있었다. “어머님은 어떠셔?” “의사 선생님이 수술 안 하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어.” 하윤슬은 주먹을 꽉 쥐고 겨우 입을 열었다. “주하야, 혹시 돈이 여유 있으면 좀 빌려줄래?” 그동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남에게 돈을 빌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은 모두 어머니 치료비에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럼! 4천만 원 정도 있어. 지금 바로 보내줄게.” 강주하는 망설임 없이 바로 답했다. “계좌 번호 알려 줘.” “의사 선생님이 수술비가 2억 원은 필요하다고 하셨어.” “...” “주하야, 나 이번에 정말 엄마를 잃게 되는 걸까...” 하윤슬은 벽에 몸을 기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2억 원을 어떻게 모아! 절대 불가능해.” 휴대폰 너머로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포기하지 마,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다른 방법? 하윤슬의 몸이 갑자기 움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