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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말을 마친 후, 진태하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하음은 눈을 깜빡이며 조금 놀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 나한테 치근덕댄 건 어떻게 알았어요?” 황씨 가문의 회사는 화양 테크의 제일 큰 거래처고 황천우는 그 황씨 가문의 후계자다. 지난주, 생산 라인 점검 때 안면을 트게 된 뒤로 황천우는 이하음에게 지나칠 정도의 연락 공세를 해왔고 이하음은 그의 연락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천우는 알아주는 바람둥이로 함께 호텔을 간 여자만 벌써 100명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하음 씨처럼 예쁜 분을 남자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으니까요.” 진태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하음은 그의 칭찬이 조금 쑥스럽기는 했지만 아까처럼 어색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뭐가 됐든 대화의 물꼬를 트고 나니 분위기가 한결 편해졌다. 서로에 대해 잠깐의 대화를 나눈 후, 이하음은 옷을 사러 가자며 진태하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이하음은 가족 단톡방으로 들어가 폭풍 타자를 했다. [이하음: 아빠, 엄마, 나 태하 씨 데리고 옷 사러 갈 거예요.] [이운해: 돈 필요해서 문자 보낸 거면 나 말고 마님한테 얘기해.] [한영애: 6천만 원 보냈으니까 마음껏 사. 옷 때문에 기 눌려있는 거, 엄마는 싫다.] [이운해: 6천만 원이나 보냈어?!] [한영애: 뭐 문제 있어요?] [이운해: 아니아니. 당연히 없지.] 이하음의 휴대폰으로 6천만 원이 송금됐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한영애 덕에 잔액이 2억 4백만 원으로 바뀌었다. 이하음은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으며 얼른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이하음: 사랑해요, 엄마!] 이하음의 키는 168cm고 진태하는 190cm였기에 진태하는 이하음의 단톡방 내용을 전부 다 볼 수 있었다. 통 큰 장모님의 송금에 진태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괜스레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이하음도 그렇고 그녀의 부모님도 그렇고 아직 백수인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환대를 받은 값은 해야겠지?’ 단지 밖으로 나온 후 이하음은 곧바로 택시를 잡았다. “해성 백화점으로 가주세요.” “10만 원입니다.” 택시 기사는 이하음의 옷차림을 보고는 바로 10만 원을 요구했다. “미터기가 멀쩡한데 무슨 5만원...” “10만 원 드릴게요.” 이하음은 쿨하게 알겠다고 한 후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매너 좋은 신사처럼 진태하가 먼저 타기를 기다렸다. “타시죠, 약혼자님.” 진태하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호 백화점을 가리켰다. “저쪽에도 백화점이 있는데 왜 다른 백화점으로 가는 겁니까?” “성호 백화점에는 저렴한 브랜드밖에 없어요. 태하 씨는 내 약혼자니까 당연히 고급 브랜드 옷으로 사줘야죠.” “옷이라는 건 몸을 가릴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냥 저기로 가서 사요.” 진태하는 그렇게 말하며 이하음의 팔을 끌고 성호 백화점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치하고 비교하는 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컸기에 비싼 옷에 대한 욕심이 아예 없었다. “지금 내 지갑 걱정해 주는 거예요?” 이하음이 피식 웃으며 묻자 진태하가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이하음 씨는 돈 걱정 안 해도 될 정도로 엄청 부자인가 봐요?” “...” 이하음이 입을 닫았다. 사실 통장 잔고에 있는 2억 4백만 원 중 1억 2천만 원은 회사를 위해 써야 할 돈으로 그녀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한영애가 6천만 원을 보내기 전까지 고작 2천4백만 원밖에 안 됐다. 만약 한영애가 돈을 보내주지 않았으면 그녀는 아마 해성 백화점으로는 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언니 태도 못 봤어요? 만약 내일도 태하 씨가 오늘처럼 입고 나타나면 또 뭐라고 할 거예요.” 이하음의 말에 진태하는 피식 웃더니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뭐가 중요해요?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사람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아요.” 이하음은 진태하에게 잡힌 자신의 손을 보며 심장이 멋대로 쿵쿵 뛰는 느낌을 받았다. ‘고작 손잡는 것에 설레지 말란 말이야!’ 잠시 후. 두 사람이 백화점 근처에 도착했을 때, 웬 승합차 한 대도 두 사람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췄다. 차 문이 열리자 야구 배트를 들고 가면을 쓴 열댓 명 정도의 남자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렸다. 남자들을 발견한 진태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하음을 보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 있어요. 통화 좀 하고 들어갈게요.” “그래요.” 이하음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라 흔쾌히 알겠다고 하고는 곧장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진태하는 이하음이 보낸 후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들 앞으로 다가가 공격을 퍼부었다. 천원산 도로에서 봤던 살수들과 달리 아무런 위협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저 흔히 보이는 양아치들일 뿐이었다. 진태하는 널브러진 남자들 중 제일 앞에 있는 남자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누가 보냈지?” 가면남은 손을 덜덜 떨며 얼른 입을 열었다. “화, 황씨 가문의 도련님이 보냈어요...” “황씨 가문? 혹시 황천우?” “네네네. 황천우 맞아요. 이하음이라는 여자 옆에 있는 남자를 반쯤 죽여놓으라고...” “그래서 날 반쯤 죽일 생각이셨다?” “제, 제가 어떻게 감히!” “가서 황천우한테 전해. 한 번만 더 날 건드리면 그때는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알았어?” 가면남은 진의 기세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꺼져!” 진태하는 가면남을 멀리 던져버린 후 다시 유유히 백화점 쪽으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그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도로 맞은편 그늘에 세워진 롤스로이스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저 한번 바라보기만 했을 뿐, 금세 다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승합차에서 내린 가면남들이 자리를 벗어난 후,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앉은 중년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방금 저희 쪽을 본 걸까요?”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을 거다.” 중년 남성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자의 의술이 정말 그렇게도 대단합니까?” “나도 확실치는 않아.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노인이 말했다. 2시간 후. 이하음과 진태하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채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옷을 이렇게나 많이 살 필요가 있었습니까?” 진태하가 소파에 앉아 현관을 가득 채운 쇼핑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진태하가 말리지 않았으면 이하음은 아마 매장을 통째로 다 사들였을지도 모른다. 이하음은 고작 30벌 정도밖에 안 되는 옷들을 보며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진태하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태하 씨 옷 사주라고 6천만 원이나 보내줬는데 아직 천만 원 정도밖에 못 썼어요.” “6천만 원이요? 6백만 원 아니었어요?” 진태하가 벙찐 얼굴로 물었다. 아무래도 대화 내용을 자세하고 정확히 본 건 아닌 듯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신발이 도착했나 보네요.” 이하음은 그렇게 말하며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매장 직원 세 명이 양손 무겁게 쇼핑백을 들고 찾아왔다. 신발 상자를 하나하나 위로 쌓아보니 어느새 이하음의 키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구두, 운동화, 그리고 슬리퍼까지... 종류별로 다 산 거예요?” 진태하는 20여 쌍의 신발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대체 언제 산 거지? 나랑은 옷만 샀는데? 혹시 내가 그놈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 산 건가?’ 이하음은 신발 정리를 마친 후 소파로 돌아가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에어컨을 켜며 새 잠옷을 진태하에게 건네주었다. “먼저 씻어요. 나는 좀 쉬어야겠어요.” 진태하는 그녀의 지시대로 잠옷을 건네받은 후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이하음은 소파에 널브러진 채로 있다가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반 투명유리라 진태하의 실루엣이 그대로 보였다. 이하음은 다부진 그의 몸을 본 순간 급하게 쿠션으로 눈을 가렸다. ‘아니, 커튼은 왜 안 치는 거야?!’ 그녀의 얼굴은 빨갛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10분 후, 잠옷으로 갈아입은 진태하가 욕실에서 나왔다. 이하음은 빨개진 얼굴로 그에게 드라이기를 건넸다. “이거 쓸 줄 알아요?” “나는 그냥 산에 살았을 뿐이지 원시인은 아니에요.” 진태하는 그렇게 말하며 드라이기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개요? 혹시 내가 샤워하는 모습을 훔쳐보기라도 했어요?” “아, 아니거든요! 그냥 더워서 그래요, 더워서!” 이하음은 답지 않게 발끈하고는 잠옷을 들고 재빨리 욕실로 뛰어갔다. 욕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커튼을 친 후 크게 심호흡했다. 당황한 모습이 정말 누가 샤워하는 걸 몰래 지켜보기라도 한 듯했다. 잠시 후, 간신히 진정한 이하음은 씻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세면대 위에 놓여있는 빨간색 팬티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이걸 빨아달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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