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5장 그 사람이 살인범이다
“알아요. 어제도 삼촌이 우리를 데리러 온 거잖아요.”
진조남은 표정이 착잡해졌다.
“그래서 삼촌이 상처받는 게 싫어요.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말을 뱉던 진조남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민서희는 진조남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엄마 때문에 아빠가 사망한 거야?”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인 진조남은 기억을 떠올리며 계속 몸서리를 쳤다.
민서희도 그 아이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품에 안았다. 진조남은 애써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답했다.
“아빠가 자살하던 날 제가 그 방에 있었어요.”
“제가 일부러 들어간 게 아니라 아빠가 뭘 깨달았는지 나중에 엄마의 정체를 밝히라며 저를 옷 장안에 숨게 한 뒤 하인을 시켜 밖에서 자물쇠를 채웠었어요.”
“근데 그 틈새로 엄마가 한 사람을 데리고 아빠 방으로 들어오는 걸 똑똑히 확인했어요.”
민서희는 당혹스러웠다.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고? 남자야? 여자야?”
“남자요.”
진조남은 작은 목소릴로 말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이었어요.”
민서희는 숨이 흐트러졌다.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을 심란연이 왜 데리고 들어간 거지?
민서희는 참지 못해고 계속하여 추궁했다.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
진조남은 민서희를 꽉 끌어안았다.
“그 남자가 아빠 앞에서 회중시계를 들고 몇 번 왔다 갔다 흔들었더니 아빠가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만 같았어요.”
“그러다 엄마하고 그 남자가 방을 나서자 아빠가 옆에 있는 그릇을 깨뜨린 다음에...”
공포에 질린 진조남은 민서희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고 가슴이 서늘해진 민서희는 진조남을 위로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이게 바로 최면술이라는 건가?
진시호의 의식을 최면시켜 목숨을 그토록 아끼는 그 사람이 자살을 택하게 했다니...
근데 심란연은 그런 최면술사를 어디에서 알게 된 거지?
멀리 내다봐도 한성에 그만한 재주를 가진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극히 드물었다. 혹시 몰래 숨어서 행동하는 건가?
진동연도 어쩌면 최면을 당해 장청아를 증오하고 심란연을 좋아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민서희는 만일 그런 거라면 진동연의 이상한 행동이 설명이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민서희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진동연과 그들은 마치 포위망 안으로 들어간 것만 같았고 적은 어둠 속에서 그들을 훤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조안가 옷장에 있다는 걸 누가 발견한 거야?”
진조아는 어깨를 움츠렸다.
“옷장에서 울면서 깨어나자 하인분이 구해줬어요. 엄마도 제가 뭘 본 건 아닌가 싶어 며칠 동안 캐물었었는데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척 시치미를 뚝 뗐었거든요. 그제야 마음을 놓으시고 저한테 신경을 끄게 된 거예요.”
어린 나이에 심란연이 진시호를 살해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많은 걸 감당해야 하는 진조남의 모습이 안쓰러운 민서희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풍파를 겪어보지 못했던 아이라면 아마 지금쯤 정신을 잃었을 수도 있다...
“조아야.”
애처로운 마음에 민서희는 그녀를 꽉 껴안았다.
진조남은 고개를 들었다.
“이모, 저를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술만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저를 때리거나 욕을 퍼붓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죽든 말든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다만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긴가민가했었는데 그 일로 살인범이 됐다는 것도 알고 이제는 조아의 엄마 자격도 없는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