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2장 그가 엄청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진동연은 권력자의 티를 내지 않으며 악수를 청했다.
진동연에 대한 인상이 그런대로 좋은 편인 서이준은 눈빛에 계산으로 가득 차 있는데다 매우 총명한 인물일 이 사람이 최면에 걸렸다는 게 의아할 정도였다.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은 민서희 씨 몸 상태가 어떤지 걱정이 돼서 한번 들러봤어요. 민서희 씨, 몸에 별 이상이 없으신 거죠?”
민서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깨어났더니 몸에 통증도 없고 내일이면 퇴원해도 될 것 같아요.”
“서이준 선생님.”
문밖에 있던 빈영이 친절하게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시니까 개인적인 일이긴 한데 저를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엄청 해결하기 힘든 일이라서요.”
서이준이 끌려가자 진동연은 문을 닫으며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이 부부라 그런가 같은 날 아프면 어떡해요.”
민서희는 자신도 모르게 이부자리를 움켜쥐었다.
“무슨 말이에요? 박지환 씨가 아파요?”
진동연은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네, 근데 신체상의 문제는 아니고 정신적으로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지환이가 정신상의 문제가 있다는 걸 민서희 씨도 잘 알고 있죠. 아까 보러 갔을 때 지환이가 자책하는 얼굴로 저한테 자기가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었고 통제 불능으로 일을 저지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일은 이미 벌어진 상태라고 했었어요.”
민서희는 표정이 약간 움직이다 이내 이마를 찌푸렸다.
“진동연 씨, 지금 박지환 씨 대신에 설명이라도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돌아가세요. 어떤 상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경솔한 말 한마디로 용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게다가 입이 없어요? 설명을 왜 진동연 씨가 하고 있는 건데요?”
진동연은 눈빛은 깊은 감정이 스쳐지났다.
“지환이가 호진은하고 치료를 받으러 갔거든요.”
“호진은?”
민서희는 그 이름에 본능적인 노여움이 섞여 있었다.
“박지환 씨 데리러 간 거예요?”
진동연이 답했다.
“데리러 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호진은은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본 목격자예요. 감시카메라에 찍힌 동영상에서 호진은은 지환이하고 같은 차에 올라타 있었고 민서희 씨와 서이준하고 같이 걸어와 지환과 트러블이 일어나고 수습하지 못할 상황에 다다를 때까지 호진은은... 여전히 차 안에 있었어요.”
민서희는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더니 분노를 참지 못했다.
“주치의면서 박지환 씨가 이성을 잃고 있었을 때 왜 아무런 대책도 하지 않았던 거예요? 와서 제지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게요.”
진동연은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왜일까요? 지환이가 감정 조절이 안 되기 시작한 게 얼마 전 일인 것 같은데 그 호진은도 얼마 전에 한성에 온 거 아닌가요?”
민서희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진동연의 그 말은 마치 그녀를 일깨워주는 열쇠나 다름없었고 기억이 휘몰려 오게 되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박지환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호진은이 그녀의 주치의가 된 그때였다.
그러다 호진은이 비록 그녀의 주치의를 그만두긴 했으나 그로 인해 박지환의 신임을 제대로 얻게 되었었다.
결국은 호진은이 박지환의 주치의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게 호진은이 바라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진동연은 소맷부리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민서희 씨, 오늘 제가 만났던 지환이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괴로워 보였어요.”
“민서희 씨를 해쳤단 자괴감에서 벗어나오지도 못하며 민서희 씨를 만날 용기를 잃어버린 채 약간 퇴폐적으로 보였어요. 정말 처음 활기가 넘치며 계략을 잘 짜던 박지환의 그림자는 온데간데없고 자신감이 박탈당한데다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요. 지금은 지환이가 가장 마음이 허약한 상태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