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1장 널 데리고 떠날 수 있어
“그래요?”
진동연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으나 표정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그윽해 보였다.
이상한 기분에 당황한 호진은은 진동연은 왜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뭐 그닥 신경을 쓸 일도 아니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진동연은 그저 바둑판에 놓인 희생양이고 아무리 똑똑해 봤자 멀리 뛰어도 그 사람의 손아귀에 벗어나지 못할 새에 불과하다.
“그럼요.”
호진은은 빙긋 웃더니 깊은 오뇌에 빠진 박지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박지환 씨, 오늘 치료 일정이 잡혀 있는데 이만 들어가 볼까요? 제 말을 들어야 오늘과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어요.”
박지환이 자리를 떠나자 빈영이 야유를 했다.
“박 대표님이 왜 저러시는 거예요? 정말로 정신상태에 이상이 있는 건가요? 오늘 교문 앞에서 찍힌 동영상을 훑어봤는데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만도 같았어요.”
진동연은 어두운 눈빛으로 떠나가는 차량을 주시하고 있었고 빈영은 재차 입을 열었다.
“도련님, 우리 어디로 갈까요?”
“민서희 씨 상태가 어떤지 살펴야 하니까 병원으로 가.”
...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민서희는 허둥지둥 배를 움켜쥐고 있었고 옆에 있던 서이준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아기는 무사해. 걱정 마.”
눈빛이 파르르 떨리는 민서희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다행이에요... 설마라도...”
옥중에 있었던 일들이 다시 재연될 까 두려웠던 것이다.
서이준은은 그녀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서희야, 박지환은 하나도 변한 점이 없이 여전히 이기적이고 자사자리한 놈이야. 자신의 불쾌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런 짓까지 한 놈인데 그래도 옆에 계속 붙어 있을 거야?”
“임산부한테 이별을 권하는 게 적당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박지환이 널 다치게 한 점으로 볼 때 결코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그래.”
“오늘은 입원만 시켰겠지 다음에는 뭐가 닥칠 줄 알아. 그러다 먼 훗날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잖아?”
서이준의 뜻을 잘 아는 민서희는 물을 천천히 마시고 있었다.
누구나 그러한 박지환을 마주쳤다면 당연히 당황하고 의아해할 게 뻔했다.
그녀도 포함해서 말이다.
방금 나온 꿈의 장면도 모두 감옥에 있던 생활이 배경이었고 박지환의 냉담함은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 감정이란 하나도 들어있지 않는 냉혈 인간과도 같은 박지환은 악마 그 자체였다.
“이준 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알아요. 그리고 지금 그 사람이 선보인 행동들도... 실망스럽다는 것도 잘 알고요.”
민서희는 복잡한 마음에 배를 감싸고 있었다.
“근데... 지금은... 아직...”
“왜?”
서이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한테 이렇게나 상처를 안겨주잖아...”
서이준은 착잡한 눈빛을 쏘아붙였다.
“혹시 그 정도로 박지환을 사랑하는 거야?”
고개를 든 민서희의 눈빛에는 생기가 전혀 없었고 합지한 설명도 내뱉지 못한 채 눈길을 떨구었다.
“그 사람하고 상관없는 일이에요. 진동연 씨 쪽에 아직 의심이 가는 일들이 있어서 그것만 해결하면 박지환과의 관계도 제대로 고려해 보려고 해요.”
서이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박지환이 만일 또 한 번 너한테 상처를 주게 되면 그때는 나도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
“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널 데리고 떠날 거야.”
민서희는 허약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서이준은 어리둥절해 있다 그녀의 젖은 앞머리를 귓전으로 쓸어넘겨 주었다.
“내가 너한테 빚진 거야. 그때 네가 박지환 앞에서 모든 걸 감당하겠다면 날 지켜냈듯이 나도 물불 가리지 않고 널 지켜낼 거야.”
바로 그때 문이 갑자기 열렸다.
진동연은 밖에서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내가 때아닌 시간에 들어온 건가요?”
민서희가 소개했다.
“이준 씨, 저분은 진씨 그룹의 집권인인 진동연 씨예요. 진동연 씨, 이분은 서이준 씨예요. 제 친구이자 주치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