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7장 동진으로 떠나다
“저를 어디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그 사람이 모든 증명서들을 다 압수했어요. 그러다 제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틈을 타 도망을 친 건데 일단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택시 기사는 손을 내흔들었다.
“얼른 타요. 주머니에 돈 있어요? 일단 호텔에 가서 머물러요. 증명서가 없이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지만 내 차로 어디든 데려갈 수는 있어요. 다만 인터넷에 등록할 수 없는 상태로 뛰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집에 갈 수만 있다면 다 괜찮아요. 돈은 있어요.”
충분한 준비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민서희는 중기한테서 어지간히 챙겼었다. 비록 중기가 사납게 굴어도 부탁을 하면 뭐든 거절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찾아 이민준한테 돌려주라고 부탁할 것이다.
택시 기사가 그녀를 한 여관으로 데려가 민서희의 번호를 남겼다.
신분증이 필요하지 않은 여관이라 주거환경이 그닥 좋지는 않았고 옆에 묵은 연인의 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민서희는 잠자리에 외투를 깔고 누워 겨우 눈을 감았지만 속으로 어떻게 남은 돈을 이용해 동진으로 가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녀는 일단 양호준한테 연락해 거기에서 며칠만 머무르게 해달라고 부탁할 계획이었다.
바로 그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에 머무른 연인들 중 한 남자가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죽댕아.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나 따라서 너는 물론이고 아기까지 고생만 하고 있으니 내가 너무 미안해.”
그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나는 당신을 믿어. 우리 점차 나아질 거야.”
그 남자는 멈칫하다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내가 너희 둘을 잘 보살필게. 다시는 네 눈에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할 거고 우리 세 식구 영원히 행복하게 살자.”
민서희는 눈을 번쩍 뜨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박지환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도 그녀의 눈에서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옆에 머무른 그 여인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인 민서희는 스스로를 조소하고 있었다.
옆방은 곧 고요해졌고 민서희는 해가 뜰 때까지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
이른 아침 택시 기사는 격분한 어조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가씨! 운이 참 좋네요. 오늘 아침 여덟 시에 마침 동진을 지나는 고속버스가 있대요. 근데 아가씨가 신분증이 없어서 표를 살 수가 없으니 일단 이따가 내가 아가씨 데리고 고속버스가 지나는 장소로 갈 테니까 그 기사분한테 사정해서 태워달라고 해봐요.”
민서희도 의외였다.
“여덟 시요?”
“네! 지금 그리로 가고 있으니까 문 앞에 나와서 기다려요!”
통화를 마친 민서희는 하늘이 무너지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외투를 걸쳤다.
시간이 오래 지체되어 박지환이 찾아낼까 두려운 민서희는 지금 이 시각 박지환이 술에 깨어 그녀가 도망쳤다는 걸 벌써 발견했을 거라 예감한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여관에서 나와 문 앞에서 10여 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택시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택시 기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가씨! 얼른 타요!”
민서희는 문을 열고 들어가 옷가지에 손끝을 오므렸다.
“지금 어디 가요?”
택시 기사는 운전하며 답했다.
“교외에 동진으로 향하는 골목길이 하나 있어요.”
민서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동진에 언제 도착할 수 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면 먹을 것과 물 좀 챙기고 싶어서요.”
“그러지 않아도 돼요!”
택시 기사는 재빨리 답했다.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잖아요!”
민서희는 멈칫했고 택시 기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고속버스가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니까 굶기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게다가 고속버스는 시간대가 있어서 괜히 시간을 놓치면 안 되고요.”
“그래요.”
민서희는 그제야 안심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동진에 가야 할지 엄청 막막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