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2장 잘난 척 하지 마
그는 그녀한테 원망만 있을 뿐 사랑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호진은의 말대로 민서희한테 남은 건 익숙함이다. 그저 민서희가 옆에 있는 게 습관이 대서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민서희가 사랑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으니 그는 그게 더욱 화가 났다.
분노로 손의 힘이 자신도 모르게 세게 들어가자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민서희의 얼굴은 아픔이 몰려와 하얗게 질려버렸다.
“민서희, 방금 네가 했던 말 취소해.”
민서희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취소... 하지 않을 거예요.”
“박지환 씨, 이건 당신이 직접 인정한 거예요. 설마 당신이 그때 했던 말들조차 부정할 거예요?”
“내가 직접 인정했었다고?”
박지환은 눈빛에 혼란이 이르렀다.
내가 언제?
근데 곧이어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민서희를 뿌리쳤다.
“민서희, 미쳐도 정도껏 미쳐. 내가 널 사랑한다고? 그것도 내가 내 입으로 인정했다고?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너같이 악랄한 여자를 왜 사랑하겠어. 나는 단 한 번도 널 사랑한 적이 없어.”
민서희는 어리둥절해져 있다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럼 그때 그가 했던 고백들은 뭐란 말인가?
실망감이 온몸을 덮친 그녀는 힘을 잃어버렸다.
“박지환 씨. 날 놔줘요.”
역경 속에서 한참 동안 발악하다 겨우 안정이 된 그녀는 마음속의 씁쓸함을 억누르며 그를 도발했다.
“이런다고 나한테 복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하고 잠자리를 가지는 게 나한테 복수하는 거예요? 아니면 당신 스스로를 괴롭히는 거예요?”
“혹시 그냥 복수라는 명분으로 날 소유하고 결박해 당신 옆을 평생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인 거예요?”
“박지환 씨, 날 사랑한다고 인정하면 당신이 만류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 옆에 남아 있을 거예요.”
도발적인 말들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간 박지환을 더욱 놀라게 한 건 민서희의 노아 달라는 말이었다.
미천하기 그지없는 애걸함은 가시가 되어 박지환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화가 치밀었다.
“민서희, 널 만류해서 뭐 하는데?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하고 있어!”
“그널니까 날 보내주던지 감옥으로 처넣든지 해달라고요! 안 그러면 호진은은 뭐가 돼요? 날 옆에 두고 있으면서 호진은하고 결혼하게요?”
박지환은 검은 눈동자에 강렬한 감정을 담으며 이를 악물었다.
“널 남긴 건 아기 때문이야.”
“내 핏줄을 그 누구한테 넘겨주지도 않을 거고 아기만 태어나면 내가 직접 널 감옥으로 처넣을 거야!”
박지환이 문을 박차고 나가자 한참 동안이나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민서희는 고개를 떨구고 이를 악물며 눈물을 삼켰다.
아기만 태어나면... 자유로워질 수 있나?
박지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도망치려는 생각을 포기한 민서희는 한동안 방 안에 갇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왕씨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민서희는 그녀가 왔다는 걸 알았다.
“민... 아니지. 뭐라고 불러야 돼요? 사모님?”
이제야 민서희가 박지환의 여자라는 걸 알게 되고 민서희 뱃속의 아기가 박지환의 아기라는 걸 눈치챈 왕씨 아주머니는 겁에 질려 있었다. 앞으로 이 여자가 한성의 가장 귀한 사모님이 아닌가?
그 호칭이 귀에 거슬리는 민서희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냥 민서희 씨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박씨 집안 사모님은 제가 아니고 박지환 씨는 저하고 결혼하지도 않을 거예요.”
왕씨 아주머니는 꽤나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민서희의 뚜렷한 생각에 은근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사모님이면 속박도 많을 텐데 좋을 것도 없죠. 차라리 아기 엄마로서 나중에 아기가 커서 재산을 물려받고 평생 복을 누리고 살면 되죠.”
그녀의 말들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어느 정도 좋아지자 민서희는 그녀한테 장난을 쳤다.
“근데 제 아기는 상속을 받을 수가 없어요. 박지환 씨가 다른 여자하고 결혼하면 이 아기는 그저 이름만 걸어놓게 되는 거고 발표조차 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