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6장 함께했던 기억들이 고통스럽다
민서희가 이토록 굳은 다짐을 하는 그 사실이 자신의 기억과 어긋나기 시작하자 박지환은 침묵을 지켰다.
민서희 혼자서 그의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설마 윤서아가 정말로 그리 순수하고 착한 모습이 아니었던 건가?
박지환은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안랑은 물을 다 마신 후 박지환 옆에서 끙끙거리며 박지환이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건지 허벅지를 살짝 물기 시작했다.
박지환은 멈칫하다 손을 내밀어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었고 방호복을 사이에 두고 문질러서인지 촉감이 전혀 느끼지 않았지만 이상한 감정이 드는 건 확실했다.
안랑은 더욱 열정적으로 혀를 내밀어 화답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강아지 사료를 들고 오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안랑이가 민서희 씨하고 박지환 씨를 엄청 그리워했던 모양이에요. 평소에 손님들이 있어도 응대하지 않으며 그저 굴에 엎드려 잠만 잤었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사람한테 달라붙었던 적이 없었다니까요.”
민서희는 비록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고 이내 몸을 쪼그리고 앉아 박지환에게 기대어 안랑에게 간식을 먹였다.
“안랑아, 받아!”
그녀가 간식을 던지자 안랑이가 한 입에 받았고 금세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비닐을 사이에 두고 있는 박지환은 마음 한 켠이 영문도 모르게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낯설지 않았고 되레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박지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
고개를 돌린 민서희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우리가 꽤나 오래 이런 적은 있어요.”
“나를 품에 안고 곧 태어날 아기를 기대했었고 때때로 내가 피곤할 때 당신의 품에 기대어 있던 나날들도 꽤나 많았었죠. 그러다 당신이 일을 마치면 나를 끌어안아 방으로 데려가기도 했었고요.”
“...”
박지환은 아무런 답이 없었으나 방호복 아래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려고 했다.
그러나 곧 이마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그는 이마를 짚었다.
“박지환 씨?”
박지환은 차분해졌으나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왜 기억이 없는 걸까? 왜 이 모든 게 나한테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걸까?
막 닿을 뻔할 것만 같으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괴롭기 그지 없었다.
박지환은 민서희를 밀치고 일어섰고 민서희는 박지환이 자리를 떠나려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녀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죄송해요. 오늘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벌써 가게요? 저는 감사 인사도 할 겸 같이 식사하려고 했는데요.”
민서희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가 입구에 도착한 걸 발견하자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같이 삭사해요... 방호복은 지환 씨한테 벗으라고 할 테니까 가져다드릴게요.”
박지환은 입구에서 방호복을 벗었고 이마의 땀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있었다.
민서희가 조심스레 물었다.
“답답했죠?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또 오도록 해요. 많은 것들은 한순간에 생각날 수도 있는 게 아니고 시간도 많은데 지금은 너무 스스로를 압박하지도 말고 천천히 해요.”
박지환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
“민서희, 나를 속이는 게 아니길 바래.”
민서희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당신을 속여서 뭐 해요. 당신이 가볍게 조사하기만 해도 나오는 결과들인데요.”
박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왜 나는 우리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런 기억도 안 나는 거야?”
민서희는 시선을 떨구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아마도 나하고 같이 있었던 기억들이 고통스러운 걸 수도 있고 훈향의 부작용 때문에 나를 잊고 싶었나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