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3장 나를 걱정해주는 거야
“박지환 씨!”
차가운 한기가 맴도는 민서희는 변형된 차 문이 열리지 않자 조수석으로 들어가 그의 안전벨트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미쳤어요? 다리가 눌렸으면서 왜 말을 안 해요?”
민서희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충돌한 위치가 왜 하필 운전석인 거지? 이건 너무 공교롭잖아?
혹시 이 사람이... 일부러?
예전의 박지환이라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구하려고 들었겠지만 지금의 박지환은 최면을 당했으니 민서희는 당연히 그가 호의적일 거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꾸겨진 정도로 보아 그녀는 작은 상처이겠지만 박지환한테 있어서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별일 아니야.”
박지환의 목소리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다리가 끼었을 뿐이야. 원래는 빼내려고 했는데 혼자 힘으로는 살짝 힘들더라고.”
살짝 힘든 정도가 아닌데...
민서희는 열불이 났다.
“정말 그저 움직일 수가 없는 정도예요? 피는 안 났어요? 아프지는 않고요? 몸이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
박지환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더니 말을 툭 내뱉었다.
“나 걱정해 주네.”
“네!”
민서희는 이를 깨물었다.
“박지환 씨, 내가 당신을 걱정하는 거 맞아요. 그리게 그게 당신이 아니라 지나가는 강아지가 똑같은 위험에 처했더라도 나는 똑같이 걱정했을 거예요. 나는 당신하고 다르게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인데다 더 중요한 건 이 차의 주인이 나라고요.”
지금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답으로 인해서인지 박지환은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마.”
민서희는 감정을 추스르고 말을 건넸다.
“구급차에 전화해서 오라고 할게요. 다리가 끼었으면 억지로 빼내려고 하지는 말아요. 괜히 상처가 더 깊어질 수도 있잖아요.”
박지환은 고개를 끄덕였고 민서희는 구급차에 전화를 걸었다.
30분이 지나 도착한 구급차는 가장 빠른 속도로 박지환을 옮기고 있었다.
민서희는 그제야 비로소 그의 다리에 온통 피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그녀는 한동안 몸이 굳어버렸고 박지환은 구급차에 실려 가고 있던 찰나 밖에 멍하니 서 있는 민서희를 힐끗하더니 입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 저 밖에 있는 여자 좀 올라오라고 해주실래요. 이번 교통사고는 저 여자가 반드시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 병원비도 내야 하는데 도망가면 못 받잖아요.”
그 말에 민서희는 어이가 없었다.
“...”
그러자 의사는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
“여사님도 올라오시죠.”
“... 네.”
차에 오른 민서희는 할 말을 잃었다.
“보신그룹의 대표님이 병원비 낼 돈이 없다는 말을 누가 믿어요.”
박지환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답했다.
“낼 수는 있지만 성격생 내가 내지 말아야 할 돈은 단 한 푼도 쓰기 싫거든.”
그 말에 또다시 화가 나는 민서희는 굳이 부상자와 상대하기도 귀찮아지자 그저 입술만 움찔거리고 있었다.
“내지 말아야 할 돈은 안 낸다니요? 그 말은 내가 다치게 했다는 거예요? 내 차에 제멋대로 올라오고 내 동의도 없이 내가 사는 주소를 알아낸 사람이 당신 아니에요? 더군다나 내 차에 손을 댄 사람은 당신이 아는 사람인데 당신이 다치게 된 건 인과응보라고 해두죠.”
“내가 아는 사람?”
박지환은 민서희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누가 범인인지 아는 거야?”
민서희는 되물었다.
“말하면 믿을 수는 있고요?”
박지환은 표정에 감정이 스쳤다.
“증거가 있으면 당연히 믿지. 만일 증거가 없다면 아무 사람한테나 누명을 씌우지도 않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