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5장 죽네 사네하고 있다
통화를 받자 호진은의 목소리는 다급해 보였다.
“지환 씨! 지금 어디에요? 경호원의 말로는 민서희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는데 괜찮은 거예요?”
박지환은 눈빛이 어두워졌다.
“나한테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근데 마치 내가 무슨 일이 벌어질 걸 아는 사람처럼 물어보네?”
호진은은 순간 침묵하다 이내 적당한 핑계를 찾았다.
“민서희가 당신한테 복수할까 봐 그러죠. 당신을 많이 미워하고 있는데다 사람 됨됨이가 종잡을 수 없으니 괜히 같이 차에 올랐다가 민서희한테 해를 당할 수도 있고 걱정이 되잖아요.”
“민서히가 나를 다치게 할 작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가 민서희의 차에 손을 댄 건 분명해.”
“정말요?”
호진은은 마음에 찔렸다.
“그럼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죠?”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병원에 있어.”
“어쩌다가...”
호진은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심각한 거예요?”
“심각했으면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겠지. 하지만 다리에 좀 문제가 생겨서 일주일 정도는 입원해야 될 것 같아.”
“내가 가서 돌봐줄게요.”
“아니야.”
왠지 모르게 박지환은 호진은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호진은하고 민서희가 마주치게 되면 귀찮은 문젯거리들을 일으킬 것만 같았던 것이다.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오면 돼. 나도 눈을 좀 부치고 싶어서 그래.”
“그래요... 지환 씨, 무슨 일 있으면 당장 나한테 전화해요.”
통화를 마치자 박지환은 휴대폰 화면이 꺼질 때까지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문이 재차 열리게 되었다.
민서희는 납부서를 박지환에게 던졌다.
“후기 입원비도 대신 냈으니까 나중에 퇴원하고 돈이 남는 게 있으면 보양식을 챙겨준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병원 쪽에 간병인을 요청했으니 바로 도착할 거예요.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
공적으로 일을 처사하고 있는 민서희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박지환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나지막하게 끙끙 소리를 내고 있었다.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춘 민서희는 뒤돌아보았다.
고통을 참는 사람마냥 안색이 안 좋은 박지환은 민서희가 가지 못하는 걸 보고 신이 났다.
“간다고 하지 않았어? 잔인하게 날 버리고 가려고 했었잖아? 가. 간병인 오기 전까지 잘 살아는 있을게.”
민서희는 할 말을 잃었다.
“...”
박지환이 죽네 사네 하고 있는데 어떻게 갈 수가 있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난 민서희는 의심이 들었다.
“아픈 거 맞아요? 또 나를 놀래키려고 장난하는 거 아니죠?”
박지환은 빈정거렸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연기해서 나한테 좋을 게 뭔데? 설마 내가 널 옆에 남겨두려고 그렇게까지 했을까?”
박지환의 말을 듣자 민서희는 의심을 풀었다.
“어디가 아픈데요?”
박지환은 그녀를 구하려다 다친 거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게 마땅한지라 그녀는 박지환이 나중에 후유증으로 괴롭히는 걸 견디기 힘들 것만 같았다.
“다리.”
박지환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지끈거려.”
“지끈거린다고요?”
민서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간호사를 불러올게요.”
진심으로 고통스러운 박지환은 그녀를 막지 않았고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는 평온해 보였다.
“마약 기운이 막 지나가서 아픈 건 정상이에요. 견디기 힘든 통증이 아닌 이상 크게 놀라지 않아도 돼요.”
민서희는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럼 언제쯤이면 통증이 좀 완화될까요? 밤새 아픈 건 아니겠죠.”
“그건 환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요.”
간호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 견디기 힘들면 진통제를 복용하셔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