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8장 남자아이의 성이 박씨였다
두 의사가 박지환을 부축할 때 민서희의 휴대폰이 올렸고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서이준이었다.
민서희는 머뭇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고 서이준이 걱정스레 물었다.
“서희야? 무슨 일이야? 혹시 오던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왜 아직도 집에 도착하지 않고 있어?”
이내 서예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민서희는 가슴이 아팠다.
“이준 씨... 미안해요...”
그녀는 화장실의 위치를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오다가 갑자스런 일이 벌어진 거 맞아요... 내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교통사고!”
서이준이 경악한 목소리를 내보이자 민서희는 급히 달래주었다.
“나는 무사하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근데 지금 상대방이 병원에 있는 바람에 처리할 일이 조금 남아 있어요.”
“설마 상대방 쪽에서 널 괴롭히는 거 아니야? 일찍 전화하지 그랬어. 내가 가서 처리할까?”
서이준이 오게 되면 일이 커질 테니 민서희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 내가 혼자서 잘 처리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금방 집으로 갈 거니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뒷마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지환은 침대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는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서이준의 전화야?”
다행히 일찍 전화를 끊은 민서희는 표정이 냉담해졌다.
“당신하고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녀는 가방을 손에 들었다.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으니까 이만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의사 선생님을 통해 나하고 연락하도록 해요.”
그녀는 단호하게 자리를 떠나버렸고 유독 서이준의 전화 이후로 더욱 망설임이 없는 듯해 보였다.
박지환은 그녀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이 고요해졌다.
민서희는 차가 고장 났으니 전화로 수리를 맡긴 후 택시를 잡았다.
별장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자 민서희는 허겁지겁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서예가 엄청 소란을 피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게 카펫 위에 엎드려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박수호는 서예의 옆에서 난장판을 치우고 있었다.
서이준은 머리를 닦으며 나왔고 민서희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알아차리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어. 나보다 서예랑 더 잘 노는 거 있지. 서예가 저 아이 옆에서는 얼마나 얌전하지 몰라.”
이게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기쁠 만한 일인 민서희는 빙그레 웃으며 박수호를 바라보았다.
“내가 복덩어리를 건졌네.”
뜨거운 시선에 수줍어진 박수호는 고개를 숙여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민서희는 쭈그리고 앉아 박수호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불쑥 물음을 던졌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까 이름을 물어보지를 않았네. 이름이 뭐야?”
박수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민서희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
“참, 네가 말하기 싫어한다는 걸 이모가 깜빡해 버렸네.”
그녀는 서예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펜을 들어 박수호에게 건넸다.
“여기에다 이름을 써 줄래. 우리가 같이 생활을 해야 되는데 이름 정도는 알아야 부르기 편하잖아.”
박수호는 펜을 꽉 쥐고 침묵을 지켰다.
한참이 흘러 그는 결심을 내린 듯 그림판에 적어 내려갔다.
“박.”
민서희는 철렁했다.
박? 어떻게 박지환하고 같은 성인 거지?
곧이어 그림판에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박연우.
민서희는 그림판을 들었다.
“박연우? 네 이름이 이거야?”
박수호는 그림책에 그려 있는 연꽃을 힐끗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고 민서희는 그 성을 보면 볼수록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을까.
박지환이 아기를 잃어버리자마자 그녀가 한 남자아기를 돌보게 되었고 그것도 마침 박씨라니...
심지어 그 아기가 입고 있는 옷은 부잣집 도련님이나 챙겨 입을 수 있는 고급진 옷감이었다.
그림판을 덮은 민서희는 서예를 안고 박수호에게 방에 쉬러 가라고 한 뒤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