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6장 귀신에 홀렸나 봐
그렇게 의사외 리안이 떠나고 문이 닫히자 임진이 민서희에게 사과했다.
“서희야, 네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호의를 거절해서 미안해.”
원래는 그저 멍하니 있던 민서희는 공손하게 사과하는 임진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괜찮아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한테 해가 되는 일도 아니고 그저 간호사를 거절한 것뿐인데요... 근데... 간병인도 없이 어떻게 몸조리하려고 그래요?”
임진은 우물쭈물거리며 물었다.
“그럼 서희 네가 해줄래?”
“뭘 해줘요?”
“간병인이 하는 일 말이야. 몸을 닦아줘.”
그의 대답에 민서희는 얼굴이 불그레해지다 곧 하얗게 질려 입술을 깨물었다.
“그거는.... 좀... 저번에도 도와주려다 고생만 했잖아요. 이번에 또 다치게 되면 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럴 리 없어.”
임진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다른 사람보다 네가 내 몸을 닦아주는 게 안심이 돼. 어제 다친 건 내가 무리한 탓이지 네 탓이 아니야. 게다가 그 간호사가 내 몸을 막 만져도 아무렇지 않은 거야?”
그건 당연히 싫었던 민서희는 고민을 하다 결심했다. 어차피 임진에게 보상도 해야 되는터라 그녀는 몸을 일으켜 뜨거운 물 대야를 긷고는 임진의 옷을 풀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이상 헛된 생각을 하지 않고 임진에게 물었다.
“상처가 어디에 있어요? 제가 닦을 때 최대한 피하게 장소만 알려주세요.”
“가슴 쪽에 있어. 그런데 붕대를 감은 곳이 많아서 그냥 팔하고 하반신만 닦아주면 돼.”
휴대폰의 소리를 듣고 난 민서희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약간 뜨거워졌다.
하반신... 정정당당하게 읊고 있는 기계음이 왜 이토록 이상한 거지...
“왜 그래?”
“아니에요. 팔 주세요. 닦아줄게요.”
그의 바지를 풀려고 하던 그때 민서희는 무의식중에 복부에 손이 닿았고 그 위치에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녀는 멈칫했다. 선천성 심장병이라면 가슴에 칼을 대야지 왜 복부마저 붕대를 감고 있는 걸까?
임진의 그녀의 의심을 눈치채고 급히 설명했다.
“의사 선생님이 또다시 상처에 덫나게 될까 봐 붕대를 상반신 전체에 모두 고정해 줬어.”
그랬구나.
하얗게 질려있던 안색이 풀린 그녀는 본인이 너무 민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체만 간단히 닦고 붕대로 감긴 곳은 조심해서 피하면 돼.”
얼굴이 붉어진 민서희는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알겠어요.”
그녀는 잡생각을 떨치려고 수건을 짜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헉...”
임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민서희는 다급히 손을 뗐다.
“임진 오빠, 왜 그래요?”
잠시 숨을 돌린 임진은 심호흡을 하고 타자했다.
“서희야, 거기에 그렇게 힘을 주면 안 돼.”
“네?... 아... 미안해요.”
눈도 안 보이는 터라 한곳에 오래 머무르며 힘을 굉장히 주었던 민서희는 벽돌에 치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야. 허벅지 닦아줘.”
얼굴이 통째로 빨갛게 달아오른 민서희는 묵묵히 닦아주고 임진이 갈아입은 환자복을 주워 들고 밖으로 나갔다.
더 창피해질까 봐 민서희는 행동을 빠르게 움직였다.
임진이 나를 어떤 굶주린 여자마냥 죽어라 한 곳에만 집중해 닦고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얼굴을 툭툭 치며 잡생각을 떨친 민서희는 간호사에게 세탁기의 위치를 물으러 다가가다 한 여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해! 임진 씨가 여자 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이지? 여자 친구가 있으면 병세가 이렇게 심각한데 병문을 한 번 안 오겠어?”
“있어. 확실해.”
리안의 이를 가는 목소리였다.
“누군지 알아? 글쎄 그 여자 친구가 바로 자주 병원에 들락날락거렸던 장님이야.”
“장님?”
고민을 하다 무언가가 떠오른듯 그 여자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설마 얼굴이 망가진 그 못생긴 여자?”
“맞아.”
“세상에! 요즘 시대 잘생긴 남자들의 취향이 어떻게 된 거야? 개들도 쳐다보지 않는 그 얼굴을 임진 씨가 좋아해? 네가 좋아하는 임진 씨 귀신에 홀린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