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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젖은 머리카락이 두피에 붙어 이마와 귀를 타고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성보람의 얼굴이 사과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눈으로 딱 한 번 훑고는 깜짝 놀란 듯 옆으로 몸을 홱 피했다. “배선우 씨, 제정신이에요? 남자가 이렇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날 이렇게 만든 건 너잖아.” 원래는 성보람 때문에 체념하고 넘어가려던 배선우였지만 문 밖으로 나와 그녀의 얼굴이 금세 새빨개지는 걸 보자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부탁하라고 했지? 그래, 지금 부탁할게. 됐냐?” 배선우는 그녀 옆으로 다가와 턱을 잡아 고개를 돌렸다. “이 얼굴 맞아? 그렇게 뻔뻔하더니 얼굴 붉힐 줄도 아네?” 남자의 몸이 점점 가까워졌다. 샤워젤과 젖은 물기의 향이 섞인 냄새가 성보람의 코끝을 자극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성보람은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을 밀쳤다. “저리 가요, 미쳤어요?” 무술을 배운 터라 힘이 제법 실렸고 배선우는 그대로 벽에 부딪히며 몸이 뒤로 휘청했다. “변태 같으니라고. 빨리 옷이나 입어요.” 성보람은 얼굴이 빨개진 채 씩씩거리며 방을 뛰쳐나갔다. 배선우는 그녀가 도망가듯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래. 드디어 이 여자의 약점을 찾았구나.’ 하지만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가슴이 떠올랐다. 작고 부드러운 손끝과 말랑한 감촉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젠장,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배선우는 순간 얼굴을 굳혔다. 혼자인 지 오래되다 보니,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을 확인하던 배선우는 어젯밤 단체 채팅방에 친구들이 올린 메시지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 ‘아까 걔 턱을 잡을 게 아니라 목을 졸라버렸어야 했는데.’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자존심도 체면도 다 그 여자 때문에 박살났다. 아침 식탁에 앉아 있을 때도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배씨 부부는 그를 보며 대체 무슨 큰 잘못을 했나 싶은 눈치였다. “밥 다 먹고 보람이 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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