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그럼 지금 바로 갈게.”
전화를 끊은 배선우는 옆에 서 있는 성보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짧은 순간 눈빛 속에 희미한 미안함이 스쳤다.
“미안해. 회사 쪽에 급한 일이 생겨서. 너...”
“아, 괜찮아요.”
성보람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배선우와는 여기서 작별 인사할 생각이었다.
“전 이따가 혼자 차 몰고 갈게요. 선우 씨 일 보러 가세요.”
“그래.”
배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차에 올랐다. 차가 서서히 멀어지고 그는 백미러를 통해 멀어져가는 거리 너머를 바라봤다.
조명 아래 서 있는 성보람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멀어지는 차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실망했겠지... 돈을 그렇게 따지는 애가 오늘은 대놓고 비싼 스위트 룸까지 예약했는데 내가 가버렸으니...’
배선우는 알 수 없는 찜찜함과 함께 아쉬움이 스쳤다. 오늘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상하게 타이밍이 안 맞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밤 8시였고 조금만 서두르면 끝난 후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보며 액셀에 더 힘을 줬다.
...
30분 후, 성보람은 체크인 절차를 마치고 엘튼 호텔 커플 디럭스 스위트 룸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웠다.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는 소운시 번화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딱 이 호텔 광고에서 봤던 바로 그 야경이었다.
성보람은 여민지에게 전화를 걸어 도착했는지 물었다.
여민지는 잠깐 짐 챙기러 예전 임시로 쓰던 자취방에 들렀다며 조금 늦게 올 거라고 했다.
혼자 있는 틈을 타 성보람은 느긋하게 샤워를 마치고 호텔에서 준비해 둔 깨끗한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객실 한쪽에 있는 빔 프로젝터를 켜 할리우드 영화를 하나 틀었다.
긴 소파에 누운 채 와인잔 하나 들고 영화를 보니 이보다 여유로울 수 없었다.
영화가 조금 루즈해지자 성보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미니바 위 와인병으로 향했다.
평소엔 술을 거의 안 마시는 편이지만 이건 무료 제공 와인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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