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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구급차는 날카로운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하선우는 중상을 입고 급히 수술실로 옮겨졌고 민설아는 가족 동의서에 기계처럼 서명만 반복했다. 서류를 모두 넘긴 뒤, 한 간호사가 민설아의 손을 붙잡았다. “민설아 씨, 대령님께서 계속 설아 씨의 이름을 부르세요. 수술 들어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저랑 잠깐만 들어가 보시겠어요?” 정신이 반쯤 멍해진 민설아는 그대로 끌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등 아래에서 하선우는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누워 있었다. 하선우는 민설아의 발소리를 듣고 간신히 눈을 뜨더니 힘없는 손으로 민설아의 손을 꽉 잡았다. “설아야...”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가서... 형수님을 좀 봐줘... 많이 놀랐을 거야. 나 대신... 잘 돌봐줘...” 그 순간, 마치 한겨울의 찬물이 민설아의 머리끝부터 쏟아지는 듯, 몸속에 있던 모든 열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예전에 하선우가 위험한 작전에서 돌아왔을 때도 죽기 직전의 목소리로 민설아의 이름을 불렀었다. “내가 못 버티면... 다시 네 삶을 살아. 그래도... 날 잊지는 마.” 그땐 자신을 향한 마지막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선우가 마지막 힘을 짜내 입에 올린 이름은 민설아가 아니라 강서진이었다. 민설아는 비틀거리며 수술실을 빠져나왔다. 복도 의자에는 강서진이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다 내 잘못이야! 내 목걸이만 안 뺏겼어도 선우 씨가 다치지 않았을 텐데... 선우 씨는 항상 그래... 맨날 나 때문에 다쳐...” 사정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강서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요. 남편분은 금방 회복하실 거예요.” 민설아는 눈을 꼭 감은 채,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간호사가 뛰쳐나왔다. “하 대령님이 계속 출혈 중입니다. A형 피가 급하게 필요해요. A형이신 분 계세요?” 강서진이 바로 눈물을 닦고 벌떡 일어났다. “저요. 저 A형이에요!” 강서진은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간호사와 함께 뛰어갔다. 민설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더니 그 웃음은 금세 눈물로 바뀌었다. 하선우는 죽을 상황에서도 강서진을 걱정했고 강서진은 울면서도 하선우에게 피를 내주었다. 둘은 너무나 완벽한 한 쌍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민설아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원래의 아내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수술을 마친 간호사가 나왔다. “민설아 씨, 다행히 수술은 성공했어요. 그런데 강서진 씨가 피를 너무 많이 뽑아서 기절하셨어요. 우리가 아무리 말려도 말을 안 들으시더라고요.” 간호사는 감탄하듯 말했다. “형수님이랑 도련님 사이가 이렇게 좋은 건 처음 봐요.” 민설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좋긴 하지. 같은 집, 같은 침대에서 사랑을 나눌 정도로 말이야.’ 민설아는 더는 견딜 수 없어 돌아서려던 순간, 간호사가 급히 막아섰다. “민설아 씨, 지금 두 분 다 의식이 없는데 이대로 두고 가시면 안 돼요. 누군가는 곁을 지켜야죠!” 결국 민설아는 병원을 떠나지 못했고 하선우와 강서진의 병실을 계속 오가며 시중들듯 돌보는 처지가 되었다. 해 질 무렵, 하선우의 병실로 돌아온 민설아는 면봉에 물을 적셔 그의 입술을 적셔 주려 했다. 그 순간, 잠들어 있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뜨며 민설아의 손목을 붙잡았다. “서진이는?” 그 한마디에 민설아는 가슴이 갈라지는 듯 아팠다. 하지만 민설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 때문에 피를 너무 많이 뽑아서 기절했어. 옆 병실에 있어.” 하선우는 순간 얼굴이 굳어졌고 미친 듯이 팔을 휘저어 수액 바늘을 뽑아버렸다. 그러자 바로 피가 새어 나왔다. “내가 뭐라고 했어?” 하선우는 언성을 높였다. “형수님을 잘 챙기라고 했잖아. 어떻게 피를 뽑게 놔둬?” 하선우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민설아를 강하게 밀쳐 버렸다. “아!” 민설아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이마를 탁자 모서리에 세게 부딪쳤다. 그러자 피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아픈 머리를 짚고 일어난 민설아는 비틀거리며 강서진의 병실 앞까지 따라왔다. 문틈으로 보인 장면은 상처에 소금을 쏟아붓듯 민설아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형수님, 누가 피 뽑으랬어요!” 하선우는 절박한 목소리로 강서진을 부르며 달려갔다. “제가 잘못했어요. 저 때문에 선우 씨가 이렇게 된 거예요. 목걸이만 아니었으면... 저도 너무 무서웠어요. 선우 씨까지 잃으면... 저도 못 살아요...” 강서진은 울면서 하선우의 품에 파고들었다. 잠시 굳어 있던 하선우는 천천히 강서진을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제가 여기 있잖아요. 걱정하지 말고 그만 울어요.” 하선우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했다. 문밖에서 그 모습을 보던 민설아는 가슴 어딘가가 산산이 부서지는 걸 느꼈다. 아프고, 뜨겁고, 비참해서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였다. 그제야 민설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선우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에게서 떠나 있었고 하선우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었다. 민설아는 조용히 병원을 떠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수년 동안 쌓아 두었던 하선우의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하선우가 직접 짠 목도리, 석 달 치 급여를 모아 사 준 머리핀, 작전 다녀올 때마다 챙겨온 작은 기념품들... 한때는 모두가 사랑의 증표였다. 하지만 지금 그 물건들은 가슴에 박힌 날카로운 칼처럼 민설아에게 고통만 남기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민설아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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