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나는 한쪽에 서서 아무런 표정도 없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수술을 마친 허준호가 나를 발견하고는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진우현 씨, 오랜만입니다.”
“두 분 아시는 사이예요?”
원장이 놀란 듯 묻자 허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뵀을 땐 진우현 씨가 저보다 선배였는데요. 이번엔 제가 진 선생님의 자리를 맡게 된다니 정말 우연이네요.”
원장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시대는 항상 새 인재가 이끄는 법이지. 진 선생은야 뭐... 규칙 하나는 철저하지만 가끔은 너무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말이야. 허 선생처럼 융통성 있는 사람이 더 낫지.”
자리를 대놓고 다른 사람에게 넘긴 것도 모자라 내 앞에서 내 성격까지 비꼬는 말이었지만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 있었다.
그때도 나는 언젠가는 또 이런 날이 오리란 걸 알았다.
그래도 내 선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진 선생님.”
허준호가 악수를 청하며 웃었지만 그 미소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가식적이었다.
나는 그를 외면한 채 말했다.
“허 선생처럼 능력 있는 분이 굳이 내 조언까지 필요하겠어?”
그날 이후로 나는 병원에서 맡은 일이 거의 없어졌고 자연스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덕분에 윤시원은 매우 기뻐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위해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며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며칠간 지켜본 결과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회사는 저녁 여섯 시 퇴근인데 윤시원은 매번 여덟 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수술이 없으니 나는 비교적 일찍 퇴근했고 어느 날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회사 여섯 시 퇴근 아니었어요? 왜 이렇게 늦게 와요?”
그녀는 깜짝 놀라듯 굳어졌고 손에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 장보러 갔다 왔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돈은 충분해요? 장도 보는데 내가 더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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