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나는 월요일이 되면 진짜로 땅을 파헤쳐서라도 내부에 있는 스파이를 찾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회사 임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세영 씨, 그 폭로 때문에 투자자들이 투자를 회수했어. 그 바람에 지금 월급조차 지급하기 어려워. 정말 미안한데 오늘부터 출근할 필요 없어.”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오랫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수혁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후 나는 바로 임신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 입사 예정이었던 신문사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고수혁은 나를 안고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세영아, 슬퍼하지 마. 내가 그 신문사에 투자할게. 그러면 그 누구도 우리 세영이 입사하는 거 막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나는 고수혁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자를 등에 업고 회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복잡한 연예 미디어 업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3년 내내 성과 1위를 달성하고 편집장이 되었지만 이런 이유로 해고당했다.
그때 나를 위해 원하는 일자리를 돈으로 해결해 주겠다던 그 남자가 지금은 나를 실직하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사랑과 미움은 역시 명확하게 구분되는 법, 사람의 마음도 쉽게 변할 수 있었다.
재빨리 방에서 나와 불당으로 향했다.
불당에서 수행 중인 고수혁은 길고 곧은 다리를 특제 쿠션 위에 꿇은 채 불교 염주를 돌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금욕적이고 차가우며 세속을 초월한 고수혁의 도도한 모습이 매우 좋았다.
고수혁이 불교를 믿기 때문에 나도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 했지만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화가 잔뜩 난 나는 고수혁의 손에서 염주를 빼앗으며 말했다.
“부처님이 당신한테 아내를 이렇게 대하라고 가르쳤어? 당신이 뭔데 내 일에 간섭하는데?”
정신이 흐트러지자 고수혁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체면이 안 서는 일은 그만둬. 돈이 필요하면 내가 줄게.”
체면이 안 서는 일?
이것은 내 두 손으로 얻은 것이다. 기사를 쓰기 위해 밤새도록 고생하고 승진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런데 고수혁이 무슨 자격으로 단 한 마디로 내 인생을 단정 짓는단 말인가?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사진 폭로한 사람을 확실히 조사해 봐. 이 누명, 내가 절대 쓰지 않을 거니까!”
고수혁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현이가 더는 따지지 않겠다고 했어. 그러니 너도 이제 그만해.”
나는 고집을 부렸다.
“따지지 않는 거야, 아니면 감히 따지기를 바라지 않는 거야? 두려워서 못 하는 건 아니고? 본인이 벌인 자작극이 들통날까 봐 두려운 건 아니고? 고수혁, 정신 좀 차려!”
고수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윤세영, 여기가 어디인지 똑바로 봐!”
범도 본인 흉을 보면 얼굴을 들이민다고 했던가, 바로 그때 서아현이 다시 나타났다.
그러고는 고수혁에게 조금 전 우려낸 차를 가져다준 후 나에게 한마디 했다.
“세영 씨, 수혁 오빠도 세영 씨 체면을 위해 일을 그만두라고 하는 거예요. 저도 연예계에 오래 있은 건 아니지만 파파라치들이 연예인을 쫓다가 맞는 거 종종 보았어요. 정말 볼품이 없었죠.”
거만한 서아현의 말투는 마치 나와 그들이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 것처럼 들렸다.
나는 바로 반문했다.
“그럼 내연녀가 정실부인에게 머리채 잡히고 얻어맞는 것도 봤겠네요? 서아현 씨도 당당하게 내연녀 노릇을 하는데 내 일이 뭐 어때서요? 내 능력으로 돈을 버는데 어디가 체면이 안 선다는 거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서아현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밖에서 어린 소녀의 초조한 외침이 들렸다.
“엄마, 엄마, 어디 있어요? 다미 방금 깼는데 엄마 어디 간 거예요!”
서아현이 급히 밖으로 나가자 서둘러 일어난 고수혁도 웬일인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간 나는 휴대폰 구직 앱을 열고 바로 이력서를 뿌렸다.
고씨 가문 사모님 역할은 고수혁이 말한 하층민의 생활보다 훨씬 재미없었다.
이력서를 잔뜩 뿌린 후 예전에 가장 좋아하던 스테이크, 피자, 거위 간을 배달시켰다.
3년 동안 이런 것들을 전혀 먹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철분 결핍성 빈혈을 앓고 있었다. 의사는 약은 그저 보조 작용을 할 뿐 실제 음식으로 보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철분이 많은 음식, 살코기, 오리 피, 닭 간 등을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빈혈이 가장 심할 때 서 있기만 해도 기절할 정도였지만 고수혁은 자기만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며 의사더러 나에게 수액을 놓아주라고 할 뿐 채식주의 원칙을 깨뜨리지 않았다.
힘들게 모든 것을 지켰지만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배달 음식이 도착했을 때 별장에서도 한창 점심 준비 중이었다.
고수혁이 고액으로 고용한 채식 요리사가 어느새 집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직접 만든 요리를 식탁에 올리며 오전 내내 정성껏 준비한 요리를 소개했다.
나를 본 고수혁은 요리사에게 말했다.
“정말 프로패셔널 하시네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이건 나를 들으라고 한 말인가...?
오늘 점심 식사 자리 위치는 어제저녁과 똑같았다.
서아현과 다미는 고수혁의 양옆에 앉아 나에게 조용히 선언하는 듯했다.
‘그쪽은 외부인이야!’
하지만 이번에는 어제처럼 음식에 손이 닿는 것만 생각하면서 그 어린 소녀 옆에 앉지 않았다. 그저 침착하게 내 배달 음식을 들고 고수혁의 맞은편 테이블 끝자리에 앉았다.
식탁 위에 요리가 아주 많았지만 한 입도 먹고 싶지 않았다.
고기 요리가 있는데 누가 풀을 먹고 싶어 하겠는가?
내가 소나 말도 아니고 말이야!
서아현은 일부러 도발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그 뜻은 아주 분명했다.
‘넌 이미 아웃!’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배달 음식 포장을 열었다. 그러자 향기로운 스테이크, 거위 간, 피자 냄새가 바로 콧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