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식탁 위에 요리사가 오전 내내 정성껏 한 채식 요리들이 배달 음식 앞에서 한순간에 빛을 잃었다.
고수혁과 함께 이틀 동안 채식을 먹은 서아현과 다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아현은 눈에 띌 정도로 침을 꿀꺽 삼켰고 다미는 당장이라도 침을 흘릴 것 같았다.
다만 고수혁만이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며 싸늘하게 물었다.
“누가 이것들을 집 안으로 가져오라고 했어!”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 별장은 우리가 결혼 후에 산 거야. 그럼 공동 재산이겠지? 절반은 내 것이나 다름없어. 내 집에서 내가 먹고 싶은 거 먹는데 뭐가 불만이야!”
말을 마친 뒤 와인 캐비닛으로 가서 작년에 고수혁이 경매에서 산 비싼 레드 와인 한 병을 꺼내 잔에 따랐다.
고수혁은 예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서 칼과 포크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스테이크를 한 입 먹은 뒤 레드 와인도 한 모금 마셨다.
아, 정말 맛있었다!
결혼 생활이 없어진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을 다시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고수혁도 성격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누구의 도발을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경호원에게 명령했다.
“그녀의 이것들을 집 밖으로 던져 버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다미가 조용히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가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나... 나도 스테이크 먹고 싶어요...”
어린 소녀는 몇 번이나 침을 삼키며 눈물이 고인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왜 우리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거예요?”
이 질문에 당황한 고수혁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린이에게 불교 수행에 대해 설명해 봤자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반면 어떻게든 고수혁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서아현은 다급히 말했다.
“다미야, 아빠는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는 거야. 채식은 건강에도 좋아. 종일 고기를 먹는 사람은 병도 자주 걸리는걸?”
나는 계속해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픈 건 내가 아플 테니까 다들 몸 건강 챙겨.”
그리고 고수혁의 우울한 표정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서 이거 먹으니까 먹고 싶어서 그래? 안 그러면 왜 내 음식을 그렇게 내치려고 그러는 거야? 고 대표, 혹시 지켜오던 룰을 깰까 봐 두려운 거야?”
나를 힐끗 바라본 고수혁은 아무 말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채식 요리를 먹었다. 경호원에게 내 음식을 집 밖으로 내던지라고도 하지 않았다.
고수혁과 함께 억지로 채식을 먹는 서아현과 그녀의 딸은 내 음식에 여러 번 눈길을 돌렸다.
오늘 나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음식을 하도 많이 시킨 탓에 술배까지 차다 보니 피자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다미는 내 피자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린이한테 아무 죄가 없다고는 하지만 만약 내가 산 음식을 아이에게 줘서 혹시라도 설사하거나 토한다면 고수혁이 분명 나에게 따질 것이기에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기대가 가득 차 있는 어린 소녀의 눈빛을 무시하고 유영자를 불러 말했다.
“이거 가져가서 유기견들에게 주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나를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던 다미의 눈빛도 빛을 잃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서아현조차 약간 실망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 외부에서 서아현에 대한 기사와 그녀 뒤를 밟는 파파라치들이 너무 많았기에 이 여자는 별장을 떠날 수 없었다.
즉 서아현은 계속해서 고수혁과 함께 채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두 모녀가 내가 남긴 음식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태연한 얼굴로 티슈 한 장을 뽑아 천천히 입을 닦았다.
자리를 뜨기 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채식 요리들을 둘러보며 서아현에게 말했다.
“앞으로 건강한 음식을 먹을 날이 많을 테니 기대하세요.”
하지만 오늘 점심의 작은 에피소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았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오후에 나는 병원에 가서 우리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내가 다섯 살 때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후 계속 여기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여전히 평온하게 병상에 누워 있는 상태였고 의사 또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깨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대 옆에서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를 들어, 나와 고수혁의 결혼 생활 등... 매우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미래에 대해 불안감과 두려움이 아주 컸다.
저녁 무렵 유영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모님, 문제가 생겼어요. 빨리 집으로 돌아오세요!”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큰일이 난 것 같은 유영자의 목소리에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유영자는 머뭇거리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지 못했다.
불안한 예감에 가방을 들고 집으로 달려간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유영자와 서아현의 다툼 소리를 들었다.
유영자가 말했다.
“빨리 청소기 내려놓으세요. 사모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세요.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바닥이 더러워졌잖아요! 그러니 깨끗이 청소해야죠.”
서아현의 목소리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아주 위협적으로 들렸다.
“윤세영 씨한테 충성을 다 하는 건 알아요. 하지만 월급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잊었어요? 수혁 오빠가 돌아와서 바닥이 엉망이 된 걸 보면 기분이 얼마나 잡치겠어요?”
서둘러 거실로 들어간 나는 거실 바닥에 눈처럼 흰 가루가 먼지처럼 살짝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내 딸의 마지막 체온을 담고 있던 자단나무 유골함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뚜껑에는 보기 흉한 균열마저 생겼다. 마치 내 아이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조용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밖은 어느새 먹물처럼 어두컴컴해진 상태였다.
굳은 몸을 천천히 움직여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으로 그 가루들을 만져 보았다.
작은 입자들은 마치 뜨거운 온도가 있는 듯 내 손까지 뜨거워져 저도 모르게 손을 거뒀다. 이 순간 내 아이가 목청이 찢어질 듯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왜 자신을 지키지 못 했냐고 너무 아프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서아현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미안해요. 세영 씨. 다미가 오늘 점심에 세영 씨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방에 숨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봐요. 오후에 내가 잠깐 정신을 딴 데 판 사이 세영 씨 방으로 갔는데 이 상자 안에 음식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꺼냈나 봐요. 거실에 들고 오자마자 넘어지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어요...”
그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서아현의 옷깃을 잡고 귀싸대기를 때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악!”
비명을 지른 서아현은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세영 씨, 이거 놔요! 수혁 오빠가 알면 세영 씨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서아현은 절망에 빠진 엄마의 힘이 이토록 강한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서아현을 죽이고 싶었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고수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세영! 뭐 하는 짓이야! 그 손 놓지 못 해!”
서아현은 구세주를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수혁 오빠, 빨리 나 좀 구해줘!”
고수혁이 나를 떼어 놓으려고 할 때 갑자기 유영자가 고수혁의 앞을 막아섰다.
아마 서아현이 피해자 코스플레이를 할까 봐 걱정되어 나선 것이다.
유영자가 고수혁 앞을 단호하게 막아서자 그제야 바닥에 흩어진 유골을 본 고수혁은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