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나는 그를 모르는 체하며 피해 가려 했지만 그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는 길쭉한 키로 나를 벽과 자신 사이에 가두듯 막아섰다. 그러더니 눈살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위염이 재발한 거야?”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비웃으며 말했다.
“다 네 탓이야.”
고수혁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나는 그냥 네가 고씨 가문을 떠나면 인생이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깨닫기를 바랐을 뿐이야.”
바로 그때 그의 비서 손강수가 다가왔다.
손에는 약을 들고 있었다.
“대표님, 위염약 사 왔어요. 물도 여기 있어요.”
“음.”
고수혁은 짧은 대답과 함께 나에게 약을 건네주었다. 이어서 생수 뚜껑을 따며 덧붙였다.
“일단 약부터 먹어.”
내 몸을 혹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바로 약을 받아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좀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고수혁은 내 뺨을 가볍게 스치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너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던데.”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기억 상실증이라도 있는 거야? 내가 그때 말했잖아, 회사 근처로 이사 갈 거라고.”
“이런 삶이 그렇게 좋은 거야?”
고수혁은 비웃듯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만약 네가 오늘 다른 남자 술자리에 동석해야 했다면 어쩔 뻔했어? 편안한 고씨 가문 사모님 자리는 내팽개치고, 매일 같이 제멋대로 난리를 피우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나는 허탈하고 무기력했다.
그와 서아현의 일은 더 이상 묻고 싶지도 않았고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내가 준 생일 선물 봤어?”
고수혁은 잠시 망설이며 대답했다.
“봤어.”
“어떻게 생각해?”
나는 그의 눈을 보며 그가 나와 함께 이혼 절차를 밟아주길 바랐다.
그러나 고수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말하는 거야?”
“그게 이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혁 오빠!”
고수혁은 즉시 내 팔을 놓고 서아현 쪽으로 걸어갔다.
서아현은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었구나! 밖에 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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