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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정신을 차려보니 주현성이 이미 나를 한쪽으로 끌어당겨 내 자리를 서아현에게 양보하고 있었다. 아까는 분명 그가 이 자리에 앉으라 했으면서도 지금은 서아현이 오해할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는 당당한 태도로 나를 꾸짖었다. “여기는 윤세영 씨가 앉을 자리가 아니야. 고 대표님 곁에는 오직 사모님만 앉으실 수 있어!” 말을 마친 그는 의자를 닦으며 말했다. “서아현 씨, 여기 앉으세요!” 나는 주현성 같은 인간을 정말 역겨워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고수혁 옆에 앉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아까 주현성이 나에게 줬던 그 큰 술잔이 여전히 서아현의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술이 이미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서아현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수혁에게 말했다. “수혁 오빠, 이 술 오빠 거야?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부러 꾸짖는 듯한 어조가 담겨 있었다. 주현성이 허둥지둥 말했다. “서아현 씨, 고 대표님을 탓하지 마세요. 이 술은 고 대표님 것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 직원 윤세영 씨 잔인데, 방금 대표님께 실례를 했거든요. 그래서 벌로 석 잔을 권하게 했습니다.” 다른 손님들도 흥을 돋우려는 듯 외쳤다. “맞아! 방금 첫 잔만 마신 것 같던데, 두 번째 잔은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서아현은 일부러 동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수혁에게 물었다. “수혁 오빠,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고수혁은 자리에 앉아 무심코 앞에 놓인 잔을 돌리며 되물었다. “그럼 네 생각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그는 이렇게 내 운명을 서아현의 손에 맡겨버렸다. 서아현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 나도 잘 모르겠어. 술자리 규칙은 잘 몰라서.” 주현성이 즉시 말을 이었다. “그럴 것까지 있나요! 윤세영 씨가 한번 보여드리면 바로 아실 거예요!” 말을 마치자 그는 나를 끌어서 서아현 앞으로 밀어붙이며 말했다. “이 두 번째 잔은 고 대표님과 사모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두 분이 백년해로하세요!” 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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