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진짜 딸인 나는 눈엣가시처럼 여기면서 가짜 딸밖에 모르던 일곱 오빠들이 날 지켜주겠다고 했고 내가 진짜 딸이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밝히겠다고 했다.
냉담하기만 했던 부모님도 유언장에 모든 재산을 나에게 상속한다고 적어 놓았다.
그들의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환생했고 더는 그들에게 기대 따위 없었다.
...
“임이서, 효진이의 천사의 눈물 네가 훔쳤지?”
소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 순간 깊이 잠들었던 임이서는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일곱째 오빠 임지성이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는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 분노에 찬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익숙한 목소리와 풍경에 임이서는 그제야 지옥 같았던 정신병원이 아닌 5년 동안 살았던 창고 방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놀랍게도... 환생한 것이었다.
전생의 처참한 기억들이 뇌리를 스치자 임이서의 눈빛이 점점 차갑게 변했다.
원래 그녀는 연성의 재벌가인 임씨 가문의 딸이었지만 태어났을 때 원수에게 바꿔치기 당했다.
얼마 전 진실이 밝혀져 임씨 가문으로 돌아왔으나 가족들은 그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우미라는 명목으로 당분간 임씨 저택에 머물게 했다.
어릴 적부터 고아처럼 자란 임이서는 어렵게 얻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너무도 소중했고 가족들의 사랑을 갈망했다.
하여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잘 보이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조심스럽게 노력했다.
하지만 진심을 다할수록 오빠들은 시골에서 자란 그녀를 더욱 못마땅해했다. 가짜 딸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촌뜨기라는 둥, 못생긴 사람이 얄미운 짓을 많이 한다는 둥, 가짜 딸의 시중을 들 자격도 없다는 둥 하면서 대놓고 비웃었다.
학교에서는 불량 학생들이 임이서를 괴롭히는 걸 보고도 묵인했고 집에서는 식탁에 앉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임이서가 잘 보이려고 애를 쓰면 속셈이 있다고 했고 거절하면 철이 없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빛도 못 보고 살아가는 쥐새끼 신세인 임이서와 달리 임효진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주였다.
더욱 가관인 건 가짜 딸이 일부러 쓰러지는 척하면서 임이서를 함정에 빠뜨린 적이 있었는데 모두 그 말을 믿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가짜 딸만 진심으로 걱정했고 정작 진짜 딸은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영하의 겨울밤에 밖에서 무릎을 꿇게 한 것도 모자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베는 듯했고 온몸이 얼어붙어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다가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따뜻한 실내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벌을 준다는 이유로 내쫓은 그녀를 완전히 잊은 채.
그런 냉대와 무시를 버티지 못한 임이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들에게 따져 물으면서 가짜 딸이 그녀를 함정에 빠뜨렸다고 말했지만 큰오빠는 그녀가 발작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직접 정신병원에 가두었다.
임이서를 보러 왔을 때 부모님은 실망과 불신이 가득 찬 눈빛으로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어쩌다 너 같은 딸을 낳았는지 모르겠어.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집에도 데려오지 않는 건데.”
그들의 시선이 가짜 딸에게 향했을 땐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효진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효진이야말로 우리 친딸 같아.”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떠나기 전 임효진은 그녀에게 승리자의 미소를 보였다.
“임이서, 임씨 가문의 자랑스러운 딸은 나야. 넌 그저 불쌍한 벌레일 뿐이고 영원히 내 발밑에 짓밟히는 신세야.”
그렇게 임이서는 병원에서 온갖 고통을 겪었고 결국 변태 의사 때문에 전기 고문을 당하다가 끔찍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어쩌면 하늘도 그녀를 불쌍히 여겨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 그들에게 기대를 걸지 않을 것이다.
‘빌어먹을 가족애, 개나 줘버려.’
“임이서, 귀먹었어? 효진이의 천사의 눈물 어디에 숨겼냐고 묻잖아.”
임이서가 고개를 들어보니 밖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실망과 의심으로 가득 찬 시선에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집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증거로 내가 훔쳤다고 단정 짓는 건데?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수가 있어.”
그녀의 말에 문밖의 사람들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늘 순종적이고 비굴했던 임이서가 오늘 이렇게 당당하게 반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니...”
임효진이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사의 눈물은 나한테 정말 소중해. 엄마 아빠가 남극에서 두 달 만에 겨우 찾은 최고급 크리스털로 만든 생일 선물이란 말이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제발 돌려줘, 언니.”
목소리는 모깃소리처럼 가늘었고 당장이라도 울음을 왈칵 쏟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이 한마디는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고 사람들은 임이서가 훔친 게 맞다고 더욱 확신했다.
임이서는 비웃듯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문밖의 가족들을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알았어. 엄마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좋은 건 다 너만 주고 너야말로 임씨 가문의 가장 소중한 딸이라는 것도 이미 여러 번이나 말했으니까 더 이상 강조할 필요 없어. 난 분명히 말했어. 내가 훔쳤다는 증거가 없으면 그건 모함이라고.”
“임이서!”
임이서의 친아버지 임환이 갑자기 성을 냈다.
“물건을 훔쳐놓고 인정도 안 하면서 동생한테 그딴 식으로 말해?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임환의 두 눈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그는 임씨 가문의 유전자가 매우 훌륭하다고 자부했다. 아들들은 각 분야에서 최고 자리에 올랐고 임효진 역시 반듯하고 고상하게 잘 자랐는데 오직 임이서만이 그의 눈에 차지 않았다.
시골에서 자라 심성이 뒤틀리고 엉망진창인 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날 낳아주긴 했지만 키워주지 않았으니 버르장머리가 있을 리가 없죠.”
임이서는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무관심한 태도로 말했다.
“목걸이가 없어졌는데 왜 다른 사람들을 조사해볼 생각은 안 해요? 임효진의 옆에 있는 사람이 훔쳤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도우미를 쏘아보았다.
전생에 임이서는 그 목걸이가 얼마나 귀중한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범인으로 몰리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오히려 제 발 저린 것처럼 보여 도둑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나중에서야 도우미가 임효진의 지시를 받고 일부러 목걸이를 훔친 다음 임이서에게 뒤집어씌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이서는 어두운 방에 갇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라는 걸 까맣게 잊었다.
그녀의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임효진에게는 성대한 성인식을 준비해줬지만 임이서에게는 창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녀가 임씨 가문의 얼굴에 먹칠할까 봐 아주 전전긍긍했다.
하늘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으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아가씨 물건을 훔쳤다니요? 평소에 제가 아가씨랑 사이가 제일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이서 씨야말로 회장님과 사모님이 아가씨한테 귀한 선물을 준 걸 질투해서 목걸이를 훔친 거 아니에요? 근데 이제 와서 저한테 덮어씌워요?”
도우미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어필했다.
“이서야, 그냥 내놔. 나중에 엄마 아빠가 다른 거 사줄게.”
임이서의 친어머니 최송연의 말투가 다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불신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저런 애랑 말싸움해서 소용없어요. 그냥 뒤져요.”
인내심을 잃은 임지성이 문을 박차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내 물건에 손을 댔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임이서의 얼굴이 갑자기 차갑게 굳어졌다.
그 모습에 임지성은 경악한 얼굴로 발걸음을 멈췄다.
‘항상 말을 잘 듣고 굽신거리던 애가 오늘따라 왜 이래? 미쳤나?’
임이서는 그들을 차갑게 훑어보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다들 내가 목걸이를 훔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진짜 도둑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줄게요.”
그러고는 곧장 도우미에게 다가가 빠르고 과감하게 그녀를 붙잡고 옷깃 안으로 손을 넣었다.
“으악, 뭐 하는 짓이에요?”
도우미는 기겁하여 비명을 지르면서 가슴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임이서는 재빨리 그녀의 가슴에서 찬란한 빛을 내는 목걸이를 꺼냈다. 그 목걸이가 바로 천문학적인 가격의 천사의 눈물이었다.
임이서는 목걸이를 집어 들고 임효진에게 힘껏 던졌다.
“자, 네 천사의 눈물. 이번에는 또 어떻게 나한테 누명을 씌울 셈이야?”
거실이 순식간에 정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