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임효진의 안색이 급변했다. 시골에서 자란 촌뜨기가 그녀의 계략을 이렇게 빨리 눈치챌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목걸이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녀는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한 도우미를 몰래 째려본 후 재빨리 목걸이를 주워 소중하게 감쌌다.
“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지성 오빠, 내가 언니가 훔친 게 아니라고 했잖아. 오후에 언니랑 다투다가 실수로 수영장에 빠졌는데 그때 잃어버렸나 봐. 나중에 목걸이를 주운 도우미가 아까워서 돌려주지 못했던 거고. 괜히 언니만 의심했어.”
‘말재주 좀 보소? 순식간에 새로운 죄목을 씌웠네?’
아니나 다를까 임지성의 복잡했던 얼굴이 금세 분노로 가득 찼다.
“임이서, 효진이가 수영 못하는 거 뻔히 알면서 수영장에 밀었어? 효진이가 죽기라도 해야 속이 후련해?”
임환도 노발대발했다.
“우리가 오해한 건 맞지만 네가 이렇게 악독한 마음을 품고 있을 줄은 몰랐어.”
최송연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서 너 엄마를 너무 실망하게 하는구나.”
만약 전생이었다면 임이서는 그들의 말에 상처받고 슬퍼했을 테지만 이번 생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임이서가 비웃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제가 밀었다고 이렇게 단정 짓는데 다음에 밀지 않으면 저만 손해 아니에요?”
임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양심도 없는 것. 어쩌다가 너 같은 딸을 낳았는지, 참.”
“딸이요? 아까 저를 의심할 때는 왜 딸이라고 안 하셨어요?”
임이서가 비꼬듯 물었다.
“언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임효진이 상처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먼저 손을 쓴 건 언니잖아...”
“임효진, 재미있어?”
임이서가 그녀의 말을 차갑게 끊었다.
“연기력이 형편없으면 내 앞에서 연기하지 마. 눈 버릴 것 같으니까.”
그러자 최송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임이서, 어찌 됐든 우린 한 가족이야. 효진이한테 사과하면 이 일은 그냥 넘어갈게.”
“한 가족?”
임이서는 그 세 글자를 반복하면서 비웃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가족이라 생각했다면 임효진한테만 생일 파티를 해주고 저는 창고 방에 처박아 뒀을까요? 한 가족이라 생각했다면 다짜고짜 저를 의심하고 제가 잘못한 게 없는 걸 뻔히 알면서 사과를 강요했을까요?”
임효진만 편애하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족이라는 사람들을 보며 임이서는 코웃음을 쳤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미련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말을 마친 임이서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문밖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임이서가 임씨 가문에 돌아온 후 이렇게 제멋대로 굴고 그 누구의 체면도 차려주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골에서 자라서 역시 천박해.”
“미친 것. 정말 말이 안 통해.”
다들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문을 닫고 나서야 임이서는 마침내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았다. 이젠 낡고 허름한 방을 둘러봐도 마음은 덤덤하기만 했다.
1년 전 임씨 가문에 돌아오자마자 임이서는 더럽고 어수선한 창고 방으로 끌려 들어왔다.
그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막 시골에서 와서 아직 모르는 규칙이 많으니까 당분간 여기서 지내도록 해. 우리 집에 손님이 자주 오는데 함부로 앞마당에 나와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네가 재벌가의 규칙을 다 배우면 그때 널 공개할게.”
하지만 임이서는 5년이나 기다렸고 정신병원에 갇혀 죽을 때까지도 가족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오늘 점심 앞마당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이끌려 임효진의 성인식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꾸지람까지 들었다.
“누가 나오라고 했어? 창피하게 굴지 말고 빨리 들어가.”
임이서가 막 돌아선 그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손님들에게 해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로 온 도우미인데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양해 바랍니다.”
그녀의 방은 차갑고 비좁았으며 아무것도 없었다.
구멍이 뚫린 유리창에서 찬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왔고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하지만 임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를 보지 못하거나 봐도 못 본 척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리창도 일주일 전에 임효진이 야구 방망이로 깨뜨린 것이었다.
“미안해, 언니. 야구하다가 조준을 잘못해서 유리창을 깨뜨렸어. 많이 놀랐어? 지금 당장 사람 불러서 유리창 갈아줄게. 날씨가 다시 추워진다는데 언니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
하지만 아무도 그 유리를 갈아주지 않았다. 임씨 가문에서 그녀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집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임이서는 숨 막히는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재빨리 짐을 쌌다.
비록 이곳에서 1년이나 살았지만 짐이 거의 없었다. 색이 바랜 옷 몇 벌과 참고서 몇 권이 전부였고 이마저도 그녀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산 것이었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그녀의 사치스러운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명목으로 매달 용돈을 십만 원밖에 주지 않았다.
그 돈으로는 학교 생활비조차 부족하여 아르바이트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었다.
반면 임효진에게는 큰오빠가 준 블랙카드가 있어서 언제든지 수억 원을 긁을 수 있었다.
임이서는 트렁크에 짐을 싸서 밖으로 나갔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임효진과 함께 선물을 뜯으면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가족 같았고 임이서는 그저 침입자에 불과했다.
하여 그녀가 옆문으로 나가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임이서가 문을 나가려던 그때 갑자기 훤칠하고 늠름한 그림자가 앞을 막았다.
“임이서, 어디 가?”
임씨 가문의 장남 임도현이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임이서는 그에게 좋게 말할 이유가 없었고 걸음을 멈출 생각도 없었다.
“비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