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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청옥아, 혁수가 왔다.” “너 당장 무릎 꿇어라. 청옥이가 너를 용서하지 않으면 절대 일어나지 못할 줄 알라!” 진혜영은 우혁수를 끌고 들어와 내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그러나 우혁수가 꿈쩍도 하지 않자 진혜영의 얼굴은 순간 붉어졌다. “혁수야, 어머니가 어떻게 가르쳤더냐? 남자로서 너그러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귓등으로 흘려보낸 것이냐?” 우혁수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너그러워야 한다고요? 부인이 바람났는데도 제가 바다처럼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까?” 진혜영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넌 눈에 멀었느냐? 아니면 눈이 엉덩이에 달렸느냐? 벼슬을 하면 일 처리가 냉정하고 과단성이 있다고 하더니, 어찌하여 청옥에 관한 일에서는 이렇게 눈이 먼 것이냐? 집에 오면 눈뜬장님이 된 것이냐?”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냐? 그럼 어머니인 내가 대신 무릎을 꿇어야겠다. 내가 어머니로서 너를 잘 가르치지 못했으니 내가 대신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겠다.” 진혜영은 말을 마치지 치맛자락을 걷고 무릎을 꿇으려 하셨다. 우혁수가 그 모습을 보자, 재빨리 그녀를 막았다. “어머니!” “막지 말거라. 무릎을 꿇기 싫다면 내버려두어라. 우리 우씨 가문에서는 예로부터 남자가 여자에게 무릎을 꿇으며 사과하는 선례가 없었다.” 우 노부인이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셨다. 각박하게 생긴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이년이 외간 사내를 따라 놀러 나갔으니 맞는 것도 당연한 거를. 혁수가 잘했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진혜영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우 노부인을 쳐다봤다. “어머님, 함부로 참견하지 마세요.” 우혁수는 머리가 아파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만 하세요. 할머니, 어머니, 두 분 다 그만하시고 돌아가세요. 제가 부인과 잘 얘기해 보겠습니다.” 나는 우혁수를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우리 사이에 또 할 말이 있단 말인가? 진혜영은 우혁수를 보며 시름이 놓이지 않아 연신 당부했다. “혁수야, 청옥이와 잘 얘기해야 한다. 청옥아, 내가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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