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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병이 발작하면 정말 무섭거든요

홀에 돌아왔을 때 여전히 모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주성훈은 레드 와인 한 잔을 들고 살짝 흔들며 주변 사람들의 아첨이나 비위 맞추는 대화를 온화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불만스러운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주성훈이 이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만 속이 너무 깊어 그 어떤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주성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흰 손가락과 어우러진 레드 와인은 마치 그의 잘생긴 얼굴처럼 완벽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훌륭했다. 사람들 속에서 오직 주성훈만이 가장 눈에 띄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나는 드레스 자락을 잡으며 주성훈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가까이 가기도 전에 구소연이 먼저 주성훈에게 접근했다. 비즈니스는 별로 하지 않지만 하나같이 눈치가 빠른 화림의 이 사람들은 구소연이 주성훈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자 눈치껏 물러났다. 잠깐 생각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부드러운 메이크업에 환한 드레스를 입은 구소연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화려하게 웃고 있는 구소연의 모습은 드레스 때문인지 강민지보다 더 신부처럼 보였다. 마치 오늘 결혼하는 사람이 그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주성훈은 이런 절세미인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구소연이 주성훈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의 시선은 구소연이 아닌 나를 향해 있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한 나는 피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주성훈이 성큼성큼 걸어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에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이내 내 앞에 도착한 주성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제야 오는 거야?” 말하면서 내 손을 잡자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와 주성훈 사이를 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주성훈이 부드럽게 말했다. “가자, 내 사업 파트너들을 소개해 줄게.” 주성훈은 내 손을 잡고 화림의 몇몇 재벌들 앞으로 갔다. 사실 이 사람들, 모두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전에 이 사람들은 외할아버지와 형제처럼 지냈지만 지금은 나를 모르는 척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주성훈은 그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말했다. “제 여자친구, 소은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말에 앞에 있던 재벌들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도 입이 떡 벌어졌다. 나를 위해 기분을 풀어주는 건 알았지만 자기 여자친구라고 직접 선언할 줄은 몰랐다. 나는 분명 주성훈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어떤 사람들은 구소연의 얼굴을 살펴보기도 했다. 구소연이 나를 정말 미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감히 그녀를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성훈이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피곤하지 않아?” 너무나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치 내가 정말 주성훈이 오랫동안 사랑하는 여자친구이고 그의 보호를 받는 여자인 것 같았다. 더욱 답답한 건 주성훈이 연기하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저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주성훈은 분명 미리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모습에 완전히 허를 찔린 나는 사람들 앞에서 반박할 수 없었기에 여자친구인 척해야 했다. 남자의 깊고 무서운 속셈에 나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오늘 이후로 모두가 내가 주성훈의 여자친구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성훈과 구소연이 약혼한 사이라는 것을 화림 사회에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 구소연과의 약혼을 어떻게 파기할 것인지 주성훈은 설명할까? 구소연이 나를 더욱 증오할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주성훈이 내 손을 잡고 연회장으로 가며 말했다. “많이 피곤하지? 일단 앉아서 쉬어.” 주성훈의 이런 모습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주성훈의 자리는 구소연과 같은 테이블의 VIP석이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구소연도 앉았다. 순간 주변 공기마저 얼어붙은 것 같았다. 주성훈의 다른 쪽에 앉은 구소연은 와인 잔을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잔은 비어 있었지만 숙련된 동작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아함이 느껴졌다. 서둘러 시선을 돌린 나는 저 멀리 소석진과 강민지가 이쪽을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강민지는 얼굴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아까 일부러 도하민을 언급하며 강민지를 불안하게 만든 데다 지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으니 관심을 못 받은 강민지는 나를 죽이고 싶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꽤 통쾌했다. 이때 주성훈이 갑자기 내 귀에 속삭였다. “혹시 그 일, 말했어?” 깜짝 놀란 얼굴로 주성훈을 바라본 나는 그의 시선이 강민지에게 고정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강민지와 도하민의 관계를 말하는 것 같았다. 똑똑한 주성훈은 한 번에 내 생각을 맞췄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부인하지 않고 말했다. “도하민 이름만 언급했어요.” 어차피 주성훈에게 숨길 수 없으니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주성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두르지 마. 복수할 거면 한 방에 끝내는 게 아니라 천천히 칼로 베어야 해.”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강민지를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뜻인가? 하지만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말투에는 심지어 약간 온화한 느낌까지 있어 그 누구도 주성훈이 어떤 잔인한 수단을 쓸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 나는 내가 주성훈의 적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구소연과 강민지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엄마의 죽음이 주성훈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나에게 접근한 것 또한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서둘러 생각을 접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강민지는 분명 나와 주성훈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것이다. 이런 것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 반드시 주성훈을 믿어야 했다. 어쨌든 여러 번 나를 구해준 만큼 그를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스스로 마음을 돌리며 강민지가 나를 상대하기 위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생각해보았다. 그녀의 비밀을 내가 알고 있으니 그녀의 성격상 아마도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연회장에서 나에게 손을 댈까? 하지만 주성훈이 내 옆에 있으니 감히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곧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손을 잡고 무대에 올라간 소석진과 강민지는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감정에 젖은 채 서약서를 읽었다. 소석진이 강민지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말하자 강민지는 눈물을 흘리며 소석진의 사랑에 감사하고 자신 역시 그를 사랑하며 죽을 때까지 변치 않겠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들은 나는 그저 역겨울 뿐이었다. 예전에 강민지가 엄마 앞에서 으스대던 모습, 소석진이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빼앗고 외할아버지의 돈으로 강민지 가족을 부양하던 모습, 두 사람이 나를 끝까지 쫓아내려던 모습이 떠올라 도무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화가 난 나머지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분노에 차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내 손등을 가볍게 덮더니 내 손을 감쌌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성훈이었다. 무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주성훈은 전혀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테이블 아래에 있는 그의 손바닥은 너무나도 넓고 따뜻해 내 모든 분노를 감싸 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코가 약간 시큰거렸고 마음도 점차 평온해졌다. 주성훈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소석진과 강민지가 서로 반지를 교환하고 포옹하며 키스하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박수가 멈추자 소석진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시다시피, 저와 전 부인 사이에 딸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소은진이에요.” 나는 차갑게 웃었다. 엄마가 언제 이 인간의 전 부인이 되었단 말인가? 분명 본처였다. 아내와 딸을 버린 소석진은 정말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소석진을 죽일 듯이 바라봤다. 하지만 소석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잘 모르실 수 있는데 은진이 엄마가 자살한 후 은진의 정신 상태가 이상해졌습니다. 오늘 정식으로 여러분께 알려드리니 앞으로 혹시라도 만나면 피하시기 바랍니다. 병이 발작하면 정말 무섭거든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정신병원에 보낼 겁니다.” 말을 하면서 소석진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의사에게서 받은 진단서입니다. 정신병 증명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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