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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3일 안에 주씨 가문에서 나가

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말이지? 엄마의 죽음이 성훈 씨와 관련이 있다는 건가? 강민지가 노골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정말 불쌍하네, 엄마를 죽인 원수를 은인으로 모시다니.” 만약 그전까지 강민지가 그저 암시한 거라면 이 한 마디는 명백히 주성훈이 범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전에 구소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주성훈이 나를 구한 것은 대신 죄를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찾기 위해서라고... 설마... 주성훈이 나에게 접근한 진짜 목적이 따로 있는 걸까?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웃듯이 나를 바라본 강민지는 구경거리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간신히 침착함을 유지한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간질을 하려면 좀 더 수준 높게 해야지, 성훈 씨는 여러 번 나를 구해줬어. 나만 해치려 했던 네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강민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믿지 않으면 말고.” 태연한 어조였지만 오히려 그런 태도 때문에 강민지의 말이 어느 정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죽음이 정말 주성훈과 관련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주성훈이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줄까? 주성훈을 의심하는 스스로에 가슴이 철렁했고 순간 나 자신을 경멸했다. 강민지의 속임수에 넘어갈 뻔했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서둘러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넌 살인자야, 우리 엄마를 직접 해친 건 아니지만 엄마는 너 때문에 죽었어! 네가 첩으로 들어와 우리 가정을 파괴하고 엄마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지 않았다면 엄마가 왜 창문에서 뛰어내리겠어!” 강민지가 배를 내밀며 웃었다. “내 실력으로 자리 잡은 거야, 무능하게 아들도 못 낳은 네 엄마를 원망해!” 강민지가 엄마를 모욕할 때마다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나는 참지 못하고 다가가 강민지의 턱을 잡았다. “그 더러운 입 계속 놀려봐! 엄마 욕 한 번 만 더 해봐,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아?” 강민지의 귀에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금 정신병자야, 살인해도 처벌 안 받아...” 제일 마지막 단어를 일부러 길게 끌었다. 내가 갑자기 강경하게 나온 것에 당황해 멈칫한 강민지는 눈에서 사나운 빛이 스쳤다. 강민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명심해, 네 경호원들이 널 구해줄 거란 기대는 하지 마. 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널 갈아버릴 수 있으니, 못 믿겠으면 한 번 해보든가.” 나를 노려보는 강민지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지만 더 이상 도발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건방진 태도도 사라지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뺨을 가볍게 치고 천천히 말했다. “아, 참, 우리 고등학교 동창 도하민 기억나?” 도하민은 강민지의 옛 애인이자 그녀 뱃속 아이의 아버지다. 강민지는 즉시 비명을 질렀다. “그 인간 왜 언급해!”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음을 지으며 강민지를 훑어보았다. “그냥 물어본 건데 왜 이렇게 흥분해?” 강민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것을 본 나는 피식 웃었다. 아마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났는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폭로할 필요 없었다. 일단 추측하게 내버려 두어 밤낮으로 불안에 떨게 하면 된다. 강민지는 확실히 불안에 휩싸인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런 강민지에 그 어떤 동정심도 느끼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엄마가 겪은 고통, 강민지와 소석진을 침대 위에서 잡아냈을 때 엄마가 혼자 방에서 울며 기절한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강민지를 어떻게 하면 더욱 힘들게 할 수 있을까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 문 앞에서 하이힐 소리가 나더니 이내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민지 씨, 나가세요.” 고개를 돌리니 구소연이 서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민지는 황급히 도망갔다. 강민지를 상대하는 데에 나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용서할 수 없는 관계까지 이르렀으니까. 하지만 구소연은 달랐다. 솔직히 말해 나와 구소연 사이에 특별한 갈등은 없었다. 구소연이 일방적으로 나를 미워하며 주성훈과 내가 불륜을 저지른다고 오해했을 뿐이다. 내가 인사하려는 순간 구소연이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성훈 씨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아직도 불륜을 저지른 게 아니라고 할 셈이에요?” 순간 어리둥절해진 나는 서둘러 설명했다. “성훈 씨와 나는 정말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알다시피 파티에서 여자 파트너가 남자 파트너의 팔을 끼는 건 정상적인 거잖아요... TV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다 그렇고...” 구소연이 비웃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여자 파트너? 남자 파트너?” 순간 실수한 것을 느낀 나는 마음이 철렁했다. 주성훈의 후배에 불과한 내가 ‘파트너’라니, 단어 사용이 적절하지 않은 것을 느끼고 급히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구소연이 내 말을 끊었다. “정말 강민지보다 더 역겹네요!” 구소연은 멍해진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강민지는 본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건 숨기지 않아요. 적어도 본인이 한 짓은 인정하는데 그쪽은요?” 구소연의 눈에는 조소가 가득했다. “강민지보다 더 구역질 나네요.” 구소연은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 모두가 소은진 씨와 성훈 씨 관계를 묻고 있어요. 소은진 씨가 성훈 씨의 새 여자친구라는 소문도 곧 나올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부정할 거예요? 내가 바보로 보여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긴, 내가 주성훈의 팔짱을 끼고 들어온 데다 주성훈이 일부러 나에게 잘해주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누구라도 오해할 만했다.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하고 있을 때 구소연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나와 두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그러고는 몸을 기울이더니 내 턱을 잡으며 말했다. “3일 안에 주씨 가문에서 나가요!” 잠시 멈칫한 나는 서둘러 말했다. “지금은 어려울 것 같아요. 알다시피 소석진과 강민지가 계속 날 노리고 있어서...” 구소연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무슨 이유든 필요 없어요. 당장 나가요!” 내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구소연은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눈치껏 행동해요. 주씨 가문에 숨어있다고 내가 어떻게 못 할 거라 생각하지 마요. 평생 문밖을 안 나올 거예요?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이전 주씨 가문에서의 공격적인 태도와 비교하면 이런 말은 나에게 아무런 타격감이 없었다. 하지만 평온함 속에서 오히려 구소연의 잔혹함이 느껴졌다. 정말로 나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구씨 가문의 딸인 구소연은 충분한 권력과 재력이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두렵긴 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주성훈의 보호를 못 받는다면 나는 다시 소석진과 강민지에게 잡힐 것이다... 내가 계속 침묵하자 나를 놓아준 구소연은 담담히 웃었다. “오늘은 그쪽 아빠에게 경사스러운 날이니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게요. 하지만 3일 후에도 주씨 가문에 눌러앉았다는 소문이 들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말을 마친 구소연은 돌아서 나갔다. 자리에 선 채 거울 속의 창백한 내 얼굴을 바라본 나는 순간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얼마나 지났을까, 도우미가 문을 두드리며 결혼식이 곧 시작된다고 알려주어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이 화장실이 사실 손님 전용 화장실이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이미 소씨 가문의 손님이 된 것이다. 아니, 주성훈이 없었다면 아직도 소석진과 강민지의 적이었을 것이다. 찬물로 얼굴을 다시 씻은 뒤 거울을 보며 감정을 추스른 후에야 나갔다. 복도에서 많은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쳤다. 예전에 외할아버지의 사업 파트너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은 나를 모르는 듯했다. 냉정한 세상에 이미 익숙해진 나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힐끗거렸다. 아마도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소석진이 재혼하는 것을 보고 내 반응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가볍게 깨문 나는 이런 순간만큼은 더더욱 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 고개를 높이 들고 당당히 걸어갔다. 비록 겉으로만 강한 척하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문득 주성훈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주성훈은 어느새 나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 있었다. 주성훈의 보호 속에서 안락한 나날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기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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