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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어떻게 빠져나갈 거야?

“책을 사이에 두고 때리면 멍이 안 생기거든요.” 백아린이 설명을 덧붙이고 추금선의 팔짱을 꼈다. “할머니, 그 얘기는 그만하고 하여튼 걱정 안 해도 돼요. 앞으로 그 누구도 저랑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할 거예요.” “아린아...” 추금선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학교에 다녀온 지 반나절 만에 어떻게 사람이 180도 달라질 수 있지? 그러다 문득 어젯밤 경찰이 찾아왔던 일이 떠올라 백아린의 손을 잡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설마 친구들이 널 진짜 의심하는 건 아니지? 학교에서 퇴학당했어? 앞으로 할머니 말대로 도윤재 같은 애랑 어울리지 마. 알았어?” “안심하세요. 오해는 완전히 풀렸고 도윤재랑도 인연을 끊었어요. 내일부터는 마음 다잡고 공부해서 꼭 명문대에 갈 거예요.” 전생에 백씨 가문으로 돌아가긴 했으나 상류층에서 고졸이라는 꼬리표는 늘 그녀를 따라다녔고 어디를 가든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도 학력과 스펙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 그런 삶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빛나고 당당하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낼 거라 다짐했다. 추금선은 귀를 의심했다. 예전엔 도윤재 이야기만 나와도 백아린은 펄쩍 뛰었다. 공부하라는 말에는 세상이 꼭 학벌로만 결정되는 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박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됐든 이제라도 현실을 직시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그래, 그래. 잘 생각했어! 거기 앉아 있어. 얼른 밥 해줄게.” 추금선은 흡족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목소리는 한껏 격앙되었다. 백아린이 말리려고 일어섰지만 할머니는 벌써 주방으로 가버렸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도로 앉아 익숙하면서도 낯선 집안을 둘러보았다. 원래는 1층 상가 두 칸을 개조해 만든 이층집이었는데 절반을 장옥희에게 내주면서 1, 2층을 합쳐도 20평 남짓한 좁은 공간만 남았다. 게다가 오래된 집이라 벽지는 이미 누렇게 변색되었고, 곳곳에 눅눅한 습기와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아래층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각종 옷가지와 헌 천 조각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런데 전생의 그녀는 할머니를 아래층으로 몰아내는 못된 짓까지 서슴지 않았다. 관절염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던 모습, 그리고 혼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던 기억이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고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추금선이 금방 만든 요리를 들고 주방에서 걸어 나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아린아, 밥 먹자.” 백아린은 알아서 상을 차리고 추금선에게 밥을 퍼 주었다. 추금선은 손녀의 달라진 모습에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이를 눈치챈 백아린이 밥을 한 숟갈 뜬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할머니,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오늘부터 2층으로 올라와서 주무세요. 그리고 이제 옷을 만들지 않겠다고 밖에다 써서 붙이세요.” “그게 무슨 소리니?” 추금선은 깜짝 놀라 백아린을 바라보았고 젓가락을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가 돈을 못 벌어서 네가 싫어하는 거 알아. 그렇지만 난 이제 나이도 있고 할 줄 아는 게 딱히 없잖아. 재봉일까지 관두면 널 어떻게 먹여 살리겠어?” “그런 뜻이 아니라...” 백아린이 차분히 설명을 보탰다. “재봉점을 좀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요. 지금은 주로 형편이 어려운 손님의 옷만 만드시잖아요. 물론 가성비 있긴 하지만 한 벌을 손수 만드는 데 며칠씩 걸리고도 고작 몇만 원 남는 장사죠. 어떤 사람들은 흥정까지 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고급 맞춤 의류로 방향을 바꿔보는 게 어때요? 정찰제로 판매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수입도 늘 거예요.” “너 바보야? 돈 많은 사람들이 이런 허름한 동네까지 와서 옷을 사려 할까? 게다가 우리가 무슨 능력으로 고급 의류를 만들겠어?” 그녀를 바라보는 추금선의 눈빛이 걱정으로 가득했고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싶었다. 백아린은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단호하게 말했다. “할머니, 저 한 번 믿어보세요. 돈을 훨씬 더 많이 벌 방법이 분명해요.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그때 다시 예전처럼 하면 되잖아요.” 수정처럼 반짝이는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마주하자 추금선도 차마 더는 반대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백아린은 밥을 먹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가 옷이 가득 쌓여 있던 방을 치우고 할머니를 모셨다. 이내 마음 편히 침대에 누워 본격적으로 의류 매장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현재는 온라인몰이 손꼽을 정도였고, 각종 쇼핑 앱도 개발하기 전이라 서둘러 착수해야 했다. 미래의 청사진을 열심히 구상하느라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을 미처 듣지 못했다. 깊은 밤, 검은색 부가티 두 대가 집 앞에 멈춰 섰다.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 8명이 차에서 내리더니 공손하게 일렬로 늘어서서 대기했다. 한지석이 차 문을 열자 강태준이 나와 선글라스를 벗으며 눈앞의 2층짜리 구식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곳은 동일하게 지어진 연립주택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벽면 일부는 타일이 떨어져 나간 채로 방치되었다. 강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맞아?” “네, 대표님.” 한지석이 공손히 대답했다. 강태준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고, 이내 눈짓을 보냈다. 한지석은 잽싸게 앞으로 나서더니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백아린 씨, 잠시만 나와주시겠어요?” 갑작스러운 소란에 이웃들이 잠에서 깨어나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고급 승용차와 검은 정장 무리를 보는 순간 의아한 얼굴로 수군대기 바빴다. “설마 조폭은 아니겠죠? 백아린이 또 밖에서 사고 쳤나?” “이 정도 규모면 빼박이지 않아요? 틀림없이 어디서 돈 훔치고 문제 일으킨 거겠죠.” “진짜 기가 막히네. 이번에는 어떻게 빠져나갈 건지 두고 보죠.” 그런 말들이 오가는 사이, 문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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