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7화

임지은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서 결국 직접 물었다. “혹시 일부러 노을을 친 거 도서찬 씨예요?” “무슨 뜻이에요?” 도서찬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임지은 씨가 나더러 오라고 한 거 아니었어요?” 도서찬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목소리에는 차가운 기운이 가득했다. “노을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도서찬 씨.” 화가 난 임지은은 도서찬을 옆으로 끌며 말했다. “누가 일부러 차를 몰고...”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의 부름이 들렸다. “서찬 오빠!” 바로 따라온 한연서는 얼굴에 묻었던 피를 이미 닦아낸 상태였다. 의사인 임지은에게 가짜 피들을 묻힌 걸 보이면 안 되니까. 지금의 얼굴에는 오직 걱정만이 가득했다. “노을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임지은은 한연서를 보자마자 화가 치밀었다. “도서찬 씨, 노을이 보러 왔으면서 어떻게 이 여자까지 데려올 수 있어요?” 임지은은 옆에 있는 한연서를 가리키며 화를 내며 소리쳤다. “노을이 화나게 하려고 작정한 거예요?” 말을 마친 임지은은 그들이 병실에 더 있는 것이 내키지 않아 바로 그들을 비상구 쪽으로 끌고 갔다. 한연서는 깜짝 놀란 듯, 도서찬의 뒤로 몸을 살짝 숨긴 뒤 부드럽게 말했다. “임 선생님,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선생님이 서찬 오빠한테 전화했을 때 저도 차 안에 있었어요. 근데 차 세우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고 서찬 오빠가 노을 씨 걱정을 많이 해서 같이 왔어요.” 임지은은 한연서의 말이 그야말로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한연서라는 ‘제삼자’를 황노을이 얼마나 싫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데려오다니, 마치 병원에 오면 당연히 같이 들어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차 안에서 기다릴 수도 있지 않았던가? 아니면 근처에서 잠깐 돌아다닐 수는 없었을까? 정말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한 임지은은 황당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맞아요.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요. 오늘 밤 두 사람이 도경 그룹 빌딩에서 함께 나와 같은 차를 타고 다정하게 떠났다면서요.” 임지은은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SNS 실시간 검색어에 다 뜨던데요.” “뭐라고요!” 한연서는 억울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 비상구 입구에 서 있는 몇 사람, 도서찬은 한연서를 뒤로 끌어당기며 그녀를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임지은은 그 모습을 보자 더욱 짜증이 났다. 인터넷에서 둘이 다정하게 다니는 걸 마구 과시하더니 병원에 와서도 이런 식이다. 황노을이 걱정돼서 온 건지, 아니면 황노을에게 자랑하려고 온 건지? “연애 연기하고 싶으면 꺼져요! 두 사람 이런 모습 봐줄 생각 없으니까!” 한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며 억울한 척했다. 도서찬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연서한테 화내지 마요. 방금 한 말, 대체 무슨 뜻이에요?” “누가 일부러 차를 몰고 황노을을 쳤어요. 나는 도서찬 씨가 시켰다고 의심하고 있고요.” 임지은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한연서와 결혼하기 위해서 노을이라는 걸림돌을 빨리 치우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도서찬이 아직 아무 말도 하기 전에 한연서가 먼저 나섰다. “임 선생님, 그런 말은 사람을 모욕하는 거예요!” 한연서는 당당한 얼굴로 맞섰다. “황노을 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건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그 책임을 단번에 서찬 오빠에게 돌릴 수 있죠?” 한연서는 화가 난 얼굴로 빠르게 덧붙였다. “선생님이 서찬 오빠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한 거잖아요. 우리가 온 지도 한참이나 지났는데 노을 씨가 어떻게 됐는지 보여주지 않으시잖아요. 임 선생님, 대체 무슨 뜻이에요? 혹시 황노을 씨가 너무 멀쩡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게 두려운 건가요?” 한연서의 몇 마디에 조금 전 황노을이 병원에 실려 왔을 때의 처참한 모습이 떠오른 임지은은 완전히 분노했다. 게다가 사건 경위를 알고 난 후 임지은은 더욱 두려웠다. 황노을은 희귀 혈액형이라 임신을 하지 않았더라도 사고가 나면 매우 위험했다. 황노을의 뱃속에는 도서찬의 아이가 있었다. 한연서가 대체 뭔데 황노을을 함부로 모함한단 말인가? 임지은이 소리쳤다. “한연서 씨, 갑자기 이렇게 발버둥 치는 이유 혹시 이 사고 본인이 사주한 거예요? 그래서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죄를 떠넘기려는 건가요?” “뭐라고요!” 한연서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억울한 표정을 드러내며 당황함을 감췄다. 도서찬은 한연서 앞에 서서 차갑게 말했다. “연서는 밤 8시 45분에 비비안 플라워 스튜디오에서 나온 이후로 줄곧 파파라치에게 미행당했어요. 오늘 어디로 갔는지 동선도 모두 인터넷에 공개됐고요. 그 후로도 계속 나와 함께 있었어요.” 임지은이 이를 악물었다. “다른 사람을 시킨 걸 수도 있잖아요.” 미간을 찌푸린 도서찬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임지은 씨, 적당히 하세요!” ... 병실 안. 황노을은 끝없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둠은 늪처럼 그녀를 깊이 끌어당기며 삼켜버리려 했다.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만 느낌에 자꾸만 쟁취하고 싶었다. 두려움, 공포, 일어나려 했지만 손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마침내 한 줄기 빛이 보여 온 힘을 다해 그 빛을 향해 기어갔다. 빛에 닿는 순간, 그녀는 작은 양옥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을 보았다. 순백의 양탄자, 검은색의 삼각형 피아노. 작은 소녀가 벤치에 앉아 피아노 건반을 누르자 익숙하지 않은, 불완전한 음들이 흘러나왔다. [엘리제를 위하여.] 통풍이 잘되는 창문 사이로 부는 바람에 오래된 창틀 뒤의 순백색 커튼이 흔들렸다. 노란빛이 도는 햇살이 서유럽풍의 인테리어가 가득한 집 안으로 스며들어 밝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소녀는 몇 번을 쳐도 잘되지 않자 조금 화가 난 얼굴로 건반을 마구 두드렸다. 그때 한 온화하고 잘생긴 남자가 소녀 곁으로 다가오더니 부드러우면서도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노을아, 뭘 하든 인내심이 필요해.” 입술을 삐죽인 소녀는 까만 포도알 같은 큰 눈에 억울함 가득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저 일주일 넘게 배웠는데도 아직 잘 안 돼요. 너무 어려워요.” 미소를 지은 남자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벤치에 앉아 소녀 앞에서 한 소절을 쳤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면서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노을아, 이것 봐. 아빠가 배웠듯이 노을은 아빠의 딸이니까 노을도 분명히 할 수 있어.” 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와아! 아빠, 언제 배운 거예요!”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고 건반을 누르는 법을 가르쳐줬다. 서툴렀던 손놀림이 점점 더 유연해지면서 두 사람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아빠도 요즘에 배운 거야.” 남자는 타이르듯 말했다. “노을이가 피아노를 배우니까, 아빠도 함께 배웠어.” 진지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는 소녀는 진심으로 칭찬했다. “아빠, 너무 대단해요!” “대단한 건 노을이야.” 남자는 미소 지으며 소녀의 손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소녀가 혼자 점점 더 유창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노을이는 자신만 믿으면 돼.” 남자가 소녀의 손을 완전히 놓아주었다. “너는 내 하나밖에 없는 딸이야. 내 모든 것은 네 것이야. 네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황씨 가문의 미래의 주인은 너였어.” “아빠, 정말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소녀가 망설이며 물었다. “할 수 있어.” 남자는 가볍게 웃었다. 따스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천천히 흐르는 피아노 선율을 듣는 남자는 눈에 소녀에 대한 감탄과 애정을 가득 담은 채 말했다. “봐, 너 지금 잘하고 있잖아?”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