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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성수혁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백유라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레스토랑을 나섰다. 그의 옆모습은 냉철하고 단호했다. 성수혁에게 정해은은 그저 공기 같은 존재였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유라야, 아까 가방 산다고 하지 않았어?” 성수혁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변했고 차가운 눈빛도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손으로 백유라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음처럼 차디찼던 얼굴이 한순간에 온기로 물들었다. 마치 아까의 냉정함이 거짓이기라도 한 듯. 정해은은 그 모습을 고요히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봐, 이게 바로 저 사람의 두 모습이지.’ 자신에게는 언제나 냉정하고 거칠며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준 적 없던 남자. 하지만 젊고 예쁜 백유라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하고 끝없는 인내와 부드러움을 쏟아냈다. 마치 그 여자가 성수혁의 전부인 것처럼. 정해은은 두 사람의 모습에서 시선을 뗐다. 더 이상 그들에게 줄 감정은 단 한 조각도 남지 않은 듯.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정해은은 곧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로 욕조를 채우고 천천히 몸을 담갔다. 그러자 하루의 피로가 물에 녹아 사라지는 듯했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감정이 들어설 틈은 점점 줄어들고 사랑이든 미움이든 모두 어느새 먼 곳으로 밀려나게 마련이다. 욕실에서 나온 정해은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드라이기를 찾았다. 그때, 휴대폰이 두 번 짧게 진동했다. 문자였다. 그러나 정해은은 바로 확인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회사에서 연락할 리 없고 주연희는 같은 집에서 살고 있으니 급할 일이면 이미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이런 건 익숙했다. ‘아마 또 백유라의 도발 메시지겠지.’ 그녀는 천천히 머리를 말리고 트리트먼트를 손끝에 덜어 머리카락에 고르게 발랐다. 곧, 순한 향이 공기 중에 퍼졌다. 라벤더와 비슷한 부드럽고 고요한 냄새. 모든 걸 마친 후에야 정해은은 침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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