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신재는 순간 얼어붙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혹시 어젯밤 자기도 모르게 이무령을 범한 건 아니겠지? 설마 환관 행세하던 게 들켜버린 건가?’
이무령은 강청연과는 다르다.
아이를 갖기 위해 다급할 이유도 없고 이무열과 똑같이 거짓을 못 숨기는 올곧은 성정의 여인이었다.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느냐?”
이무령이 물었다.
김신재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과음을 해서 중간부터 기억이 통째로 날아갔습니다.”
이무령은 속으로 기뻐하며 긴 창을 거두었다.
“별일은 아니고. 그냥 말이 좀 지나쳤을 뿐이다.”
김신재는 살피듯 물었다.
“하긴, 저는 그저 환관일 뿐인데 어찌 감히 군주마마께 무슨 짓을 하겠습니까.”
이무령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일이 너무 민망해서 더 이상 길게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허나 마음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김신재의 손길이 자꾸만 떠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정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밤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김신재에게 들켜선 안 된다.
게다가 남자도 아닌 환관에게 자신이 마음이 흔들렸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 제 분수는 아는 모양이군. 이제 그만 물러가라. 나는 군사들 이끌고 나가야 하니.”
김신재는 벌떡 일어나려다 무릎에서 뻐근한 통증이 올라오는 바람에 비틀거렸다.
바짓단을 걷어 보니 시퍼런 멍이 뚜렷했다. 어디 부딪힌 게 분명했다.
“이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무령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젯밤에 너를 끌고 오다가 문턱에 살짝 걸렸지 뭐냐. 혹시 내가 너 같은 놈을 업고 올 줄 알았느냐?”
세자 행궁으로 돌아오니 이미 하인들은 짐을 꾸리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강청연은 피부를 곱게 가꾸기 위해 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김신재의 정체가 들킬까 걱정되어 이른 새벽부터 마당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신재가 주위를 살피며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강청연이 불러 세웠다.
“이리 오너라.”
김신재는 찔리는 데가 있어 머리를 숙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