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연제국 대장군부. 행궁에서 퇴짜를 맞고 돌아온 은화영은 구상철 앞에서 엉엉 울며 하소연하였다. 사실을 과장하고 억울함은 부풀려 당장이라도 김신재를 참수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구상철 역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였다. 연제국 왕가라 해도 은화영을 무시할 수는 없었거늘, 하물며 김신재 따위가 무슨 깜냥으로 감히 그녀를 모욕한단 말인가. “그 죽일 환관 놈이 감히! 내 구상철의 여인까지 능멸하다니, 죽음이 두려운 줄 모르는 모양이구나.” 은화영이 울먹이며 말했다. “장군님, 김신재를 당장 폐해버리셔야 합니다. 아니면 세자빈께 가까이 다가갈 기회조차 없을 겁니다.” 강청연이라는 이름이 입에 오르자 구상철은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어젯밤 성급하게 움직인 것이 실책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약을 써서 세자빈을 욕보이려 했던 일은 실패한 데다 오히려 의심만 사게 되었다. “김신재 그놈, 분명히 나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구상철이 중얼거렸다. “김신재 따위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고작 환관 하나쯤은 닭 잡듯이 목을 칠 수 있을 텐데요.” 은화영이 성을 내자 구상철이 냉소했다. “무식한 소리 하지 말거라. 그자는 덕종이 직접 책봉한 4품대신이요, 세자 소부다. 그자를 죽인다는 건 덕헌국과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신재를 죽이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덕헌국과 원수지간이 되는 문제는 단순히 칼 몇 자루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덕종은 애초부터 구상철을 경계하고 있었고 작은 꼬투리만 잡아도 바로 대군을 일으킬 사람이었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장군님께서 조그만 환관 하나를 두고 머리를 숙이셔야 한단 말입니까?” 은화영이 눈에 불을 켜고 물었다. 구상철은 고개를 들었다. “허삼중이 청월루에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병권을 장악할 명분을 얻을 것이고 동궁 호위군을 접수하게 될 것이다. 그때 김신재 따위가 감히 나를 거스를 수 있겠느냐.” 은화영이 초조하게 물었다. “허삼중이 안 간다면요? 그럼 세자빈을 만날 기회조차 없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