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세자빈마마의 은혜에 감읍하옵니다!” 김신재가 바삐 고개를 조아리며 말하자 강청연은 속으로 눈을 굴렸다. ‘사내란 첩 하나 들일 땐 어찌 저리도 열성이란 말인가.’ “허나 장담한 것은 아닙니다. 춘향은 우리 어마마마께서 손수 기르신 몸종이라 섣불리 내어주기 어려울 것입니다.” “세자빈마마께서 직접 말씀하신다면 사양치 않으실 것입니다.” “그럼 일단은 알아보겠습니다. 세자소부라는 작위에 올랐으니 몸을 돌볼 이조차 없다면 곤란하긴 하시니까요.” 강청연은 전통을 중히 여기는 여인이었기에 이 같은 일에는 그다지 마음을 좁히지 않았다. 덕종 전하께서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후궁이 삼백이었고 연제국의 왕 또한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후궁이 서른둘이었다. 세자가 몸이 성하였더라면 비록 그녀가 덕헌국 제일의 미인이라 해도 적어도 첩은 열은 기본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신재가 몸종 하나 들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김신재는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청이 낭자, 기회를 주었는데 그리 허투루 흘려보내면 어떡합니까.” “흥, 누가 반쪽짜리 환관을 탐낸답니까? 전 사내다움을 갖춘 이가 좋습니다.” 청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청이와 강청연은 자매처럼 자란 사이였고 허물없는 말도 서슴지 않았기에 두 사람 사이엔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강청연은 웃음이 절로 났다. 그 늙은 환관이 죽은 후 이 나라에서 김신재가 진짜 사내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아마 강청연 뿐일 것이다. “청이는 훗날 제 자식을 맡아 길러야 하니 아직 시집가긴 이릅니다.” 청이는 그 말을 듣자 내심 불안이 엄습했다. 그녀도 올해 열아홉이었기에 이제는 슬슬 혼사를 생각할 나이였던 것이다. ‘차라리 지금 세자빈께 나를 김신재의 부인으로 삼아주십사 청해볼까? 자리만 선점해도 어디냐, 춘향 따위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김신재는 장차 세자태부가 될 인물이었기에 1품 부인의 자리는 청이 같은 미천한 신분의 몸종에겐 하늘이 내린 기회와도 같았다. 그때 문 앞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의 강성철, 무연 공주 세자빈마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