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도 이상하다는 생각한 적 없어요? 시집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어르신과 큰 사모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잖아요. 그 뜻은 어르신이 좋아했던 사람이 큰 사모님은 아니라는 말이죠... 어르신의 마음은 늘 다른 사람에게 있었어요. 하지만 큰 사모님이 얕은수를 쓰는 바람에 어르신의 아이를 갖게 되었죠. 사실 그렇게 하면 어르신이 마음을 돌릴 줄 알았는데 어르신은 큰 사모님을 더욱 싫어할 뿐이었죠. 그리고 밖에서 첫사랑을 만나고 그 여자와 아이까지 갖게 되었죠.”
이 말을 들은 서정희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그녀의 심장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요?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는데요?”
안 그래도 큰 사모님은 어르신의 첫사랑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어르신의 쌀쌀맞은 태도까지 계속 변하지 않아 많이 속상해했어요. 게다가 임신 중 호르몬 변화까지 겹쳐 마음의 병이 심해져 우울증에 걸렸어요. 하지만 큰 사모님은 아이를 위해 꾹 참았어요. 출산하던 날도 어르신의 첫사랑과 같이 조산하게 되었는데 어르신은 망설임 없이 첫사랑에게로 달려갔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서정희가 들고 있던 국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이고, 사모님. 왜 그러세요?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요?”
장미란은 얼른 휴지로 그녀의 발에 묻은 국물을 닦아 주었다.
순간 막연한 감정에 사로잡힌 서정희는 마치 가슴에 원래부터 큰 상처가 난 것처럼 느껴졌고 아물지 않은 그 상처를 누군가가 끊임없이 헤집어 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물지 않은 오래된 상처에서는 시뻘건 피가 뚝뚝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여 자기 발을 내려다본 서정희는 순간 마치 자기의 마음속 상처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왜 이러지?
분명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지만 그녀는 자기 일처럼 공감이 갔다.
“저는 괜찮아요. 그래서 그분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데요?”
서정희의 발을 닦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린 장미란은 그녀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