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진이 컵을 꽉 쥐었다.
“알아요. 내가 그 사람한테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면 죄책감이 들 거라는 거. 어쨌거나 박씨 가문에서 날 오랫동안 키워줬잖아요. 그 사람들이 제일 바라지 않았던 일일 거예요.”
연정훈이 책장을 넘겼다. 제대로 읽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럼 나랑 결혼하는 건 어때? 우리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 한마디에 방 안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박여진은 컵을 쥔 채로 몇 초간 멈칫하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정훈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이번에 정훈 씨 고모님 쪽이랑 계약했잖아요. 어제 고모님을 만났는데 언제 고모님 집에 오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어른들을 이렇게 속여도 되는 건가 싶어서.”
연정훈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가짜로 시작했지만 진짜로 만들면 되잖아.”
그는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몸을 살짝 기울여 박여진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박여진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은 순간 박여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깜짝 놀란 박여진은 그를 밀어내고는 옆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파트너였다.
“여진 씨, 어젯밤에 우리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지금은 대기업이랑 협력할 때인데 그냥 덮고 가면 안 될까요? 이 일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냥 없었던 일로 묻어둡시다.”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들의 태도에 박여진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당신들 전부 다 같이 꾸민 일이에요?”
휴대폰 너머로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화내지 말아요. 우리도 술에 너무 취해서 그랬어요.”
박여진의 두 눈에 싸늘한 기운이 스치더니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꽉 쥐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이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여진 씨, 말 좀 해봐요. 어젯밤에 우리 다 잠도 못 잤어요. 여진 씨가 홧김에 이 일을 크게 벌일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그러면 오 대표님도 곤란해지잖아요. 이 바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