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고태빈은 무척이나 기뻤다. 서규영이 마침내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돌렸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땐 너무 어렸어, 철이 없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너와 함께했던 시간만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했던 시간이었어. 인정해. 너와의 결혼에는 확실히 나의 불순한 의도가 섞여 있었어. 과거의 나는 비열하고 파렴치했어.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널 좋아하게 되었어. 아니, 사랑하게 되었어. 난 이제 밤낮으로 너만 생각해. 진심이야...” 서규영의 눈을 마주 보던 고태빈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지만 서규영은 차갑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네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으면 역겨워.” “!” 순간 고태빈의 등줄기가 뻣뻣하게 굳었다. “과거의 너는 사탕발린 말은 하지 않았거든. 난 적어도 네가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넌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야. 네 첫사랑이자 너와 신혼인 아내가 이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고태빈은 불길한 예감에 눈꺼풀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다음 순간, 서규영은 등 뒤에 감추고 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은 통화 중인 상태였고 화면에는 박해은,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서규영이 갑자기 휴대폰을 향해 말했다. “박해은 씨, 남편 단속 좀 잘해요. 짐승처럼 아무 데나 발정하게 두지 말고요, 역겹다 못해 비위 상하니까.” 말을 마친 서규영은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고태빈의 얼굴은 분노와 배신감에 잔뜩 일그러졌다. 그는 서규영이 몰래 박해은에게 전화를 걸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달리 말해 방금 그가 말했던 모든 진심이 박해은의 귀에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비록 그것이 고태빈의 진심이었을지라도, 그는 박해은에게 자신의 속마음까지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순간 서규영에게 농락당했다는 치욕과 분노가 밀려왔다. “서규영,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