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자리에 서서 다소 경멸하는 시선으로 살짝 내려다보았다.
“이시연 씨?”
이시연은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살펴보며 의아했다. 오늘 제작진들은 전부 다 봤는데 왜 이 사람에 대한 인상이 전혀 없는 걸까.
여자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입꼬리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온몸으로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나는 이엘 그룹 본사 부사장 허소민이에요.”
“허 사장님, 안녕하세요. 본사에서 무슨 지시가 내려왔나요?”
이시연은 물어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작품에 이엘 그룹은 투자하지 않았고 굳이 상관이 있다면 그녀가 담당한 두 연예인이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정도였다.
“네.”
허소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놓고 그녀를 훑어보았다.
“별건 아니고 금방 해외에서 돌아온 내가 이엘 그룹 작품을 담당하게 됐는데 육 대표님 약혼녀가 여기 있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해서 와봤어요.”
그녀가 무심한 척 피식 웃었다.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다르네요.”
이시연의 미간이 움찔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다.
여자는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아도 눈빛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었고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막 헤어졌을 때 강이준의 눈빛과 비슷했다. 다만 조금 더 상대를 살펴보며 판단하려는 모습이었다.
“이시연 씨, 육씨 가문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어떻게 아무런 소문도 나지 않았죠?”
이시연은 그녀의 질문에서 못마땅함과 경멸이 선명하게 들렸다.
“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본 허소민은 턱을 살짝 들어 더욱 조롱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이시연도 시선을 마주하면서 상대의 악의를 눈치채지 못한 듯 차분하고 동요하지 않은 눈빛과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 사장님, 우리 집안일에 관심이 많나 봐요? 어른들 일은 저보다 삼... 육 대표님께 물어보는 게 어때요? 잘 아는 사이 같은데.”
하마터면 또 삼촌이라고 부를 뻔했다. 오랜 세월 습관처럼 굳어진 호칭을 바꾸기가 참 어려웠고 바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