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라 본능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너, 너 입 닥쳐!”
내가 기억을 잃은 이 몇 년 동안 박윤성이랑 별의별 짓을 다 했다는 생각이 점점 강렬해졌다.
아니면 평소엔 그렇게 냉담하고 욕심 없어 보이던 사람이 침대 위에서만 저렇게...
미쳐 날뛰는 게 말이 안 되었다!
나는 지금 겨우 열여덟 살짜리 송지연이라 그동안의 기억도 없고 부부생활은커녕 남자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도 없는 대학생이었기에 그가 하는 저런 말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조민서 일로 우리 사이가 어색해졌으니 그걸 구실 삼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무슨 핑계를 대야 했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거절을 너무 많이 하면 눈치챌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부끄러워할 일인가?”
박윤성이 내 볼을 꼬집으며 웃었다.
“예전엔 그렇게 내성적인 애가 아니었는데.”
나는 일부러 기침을 한 번 하곤 차분히 말했다.
“나 지금도 배가 아파. 넌 그냥 출근해.”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대뜸 말했다.
“같이 가.”
서로 실랑이를 벌이던 그때 문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민서 아가씨께서 뵙길 원하십니다.”
박윤성이 문을 열자 나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조민서가 눈가를 붉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으로 박윤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미안해.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무슨 일이야?”
박윤성이 눈살을 찌푸지자 조민서는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할머니한테 일이 생겼어...”
그 순간 박윤성은 무의식적으로 내 쪽을 돌아봤고 내 눈엔 비웃음이 스쳐 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가자고 단호하게 말하던 그가 이젠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그래도 나는 절대 화내지 않았다. 딱 내가 바라던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두 사람 앞에 서서 아주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먼저 민서 씨랑 다녀와. 어르신 일부터 챙겨야지.”
박윤성은 어딘가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너도 같이 가. 내가 병원 데려다줄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