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서는 도시락을 테이블에 올려놓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소은하를 바라봤다.
“아까 윤성 오빠랑 내 얘기 하는 것 같던데 혹시 지연 씨랑 관련된 일이에요? 설마 두 사람 지금 나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억울한 말투, 그리고 원래도 청순한 얼굴이 더해지자 때 묻지 않은 하얀 꽃과도 같았다. 나는 그날 수영장 옆에서 나를 도발하던 여자와 지금 눈앞에 보이던 여자를 도무지 연관 짓기 힘들었다. 만약 그날 조민서가 나를 상대로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쓴 가면에 현혹당했을지도 모른다.
소은하는 조민서를 보며 애써 화를 꾹꾹 눌러 담았지만 누가 봐도 힘들어 보였다.
“조민서 씨의 존재가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걸 알면서 왜 자꾸 알짱거리는 거예요? 설마 두 사람이 깨지길 바라는 건 아니죠?”
소은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박윤성이 보는 앞에서 민낯이 드러난 걸 참을 수 없었던 조민서가 눈시울을 붉히며 박윤성을 바라봤다.
“미안해. 내 존재가 오빠에게 큰 폐를 끼쳤다는 거 알아. 할아버지 당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와서 성가시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조민서가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돌아가신다는 말을 내뱉는 조민서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오빠 성가시게 하지 않을게.”
적절하게 내보인 가녀림은 내가 박윤성이었어도 감동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윤성이 차가운 표정으로 소은하를 쏘아보며 말했다.
“만현에 너무 오래 있어서 네가 무슨 신분인지 잊은 거 아니야?”
이 말은 협박의 의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소은하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박윤성이 일로 소은하를 협박한 것이다. 더는 듣고 있기 힘들었던 나는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며 말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네가 뭔데 은하를 협박해?”
내 목소리에 세 사람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나를 본 소은하는 눈빛이 반짝이더니 얼른 내 옆으로 달려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