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박태진은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여자가 고의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확신했다. 그의 표정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원래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 특히 속셈이 있는 여자들은 더욱 싫어했다.
‘내가 이 여자를 과소평가했군. 방금 정시훈이 있을 때까지는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더니 정시훈이 떠나자마자 본성을 드러내네.’
“일부러 그런 거예요?”
박태진은 몸을 일으키며 이를 악물었다.
“저를 치료해 줄 수는 있지만 우리 사이에 다른 가능성은 없어요. 쓸데없는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예요. 헛된 꿈 꾸지 말라고요.”
허소원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 말을 듣고 폭소할 뻔했다.
‘몇 년 만에 보는데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있을 줄은 몰랐네? 내가 자기한테 다른 생각이라도 있다는 거야?’
허소원은 화가 났다.
“참 생각이 많으시네요! 당신이 갑자기 저를 잡아당겨서 넘어졌어요. 제가 일부러 그런 줄 아세요? 안심하시라니까요. 제가 아무리 굶주렸다 해도 시각장애인에게 손댈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시각장애인이라는 단어에 박태진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여자는 오히려 화를 돌렸다.
박태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일어나요.”
그는 1초도 더 참을 수 없어 본능적으로 몸 위에 있는 사람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다 보니 그의 손은 허소원의 가슴을 정확히 짚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박태진은 순간 얼어붙었다.
허소원도 멍해져서 그가 하얀 손가락으로 엉뚱한 곳을 만지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공기가 얼어붙은 듯 침묵이 흘렀고 오직 서로의 호흡소리만이 들렸다.
박태진은 그녀의 체온과 몸에서 풍기는 약초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향기는 마치 어디선가 맡아본 듯했다.
이내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허소원은 손을 치우지 않는 그를 보며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탁!
그녀는 그의 손을 내치며 화를 냈다.
“대체 누가 본색을 드러내는 거예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