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그녀의 사려 깊음은 박태진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 “너도 나가. 여기가 네가 끼어들 자린가? 맨디 씨 말이 틀린 거 하나도 없어. 모르면 입 닫고 방해하지 마. 맨디 선생께 사과하고 당장 나가.” 그의 목소리는 차디찼고 말투엔 일말의 여지도 없었다. 허지유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나보고 사과하라고? 왜?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몰라? 다 오빠 걱정돼서 그런 건데...’ 가슴속에서 억울함이 치밀었지만 박태진의 차가운 눈빛 앞에 그녀는 끝내 반발하지 못했다. 결국, 허지유는 굳은 표정으로 허소원을 향해 돌아섰다. “방금... 미안해요. 제가 경솔했어요.” 사과는 입에서 나왔지만 진심은 따라오지 않았다. 억지로 짜낸 말처럼 표정도 어색하고 목소리도 떨렸다. 그런 사과가 진심일 리 없다는 건 허소원이 제일 먼저 알아챘다. 그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냉랭하게 잘라 말했다. “그런 가식적인 사과는 필요 없어요. 어서 나가주세요. 보기 거슬리니까.” “너...!” 허지유는 울컥하는 감정에 얼굴이 일그러졌고 정시훈은 재빨리 나서며 그녀를 막아섰다. “허지유 씨, 밖으로 나가시죠. 지금은 맨디 선생님이 대표님을 치료하고 계십니다.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요.” 입술을 꼭 깨문 허지유는 더는 말다툼을 벌일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고 그대로 돌아서 나갔다. 거실로 돌아오자 송연희가 먼저 이를 악물고 분개했다. “당신 아들 좀 봐. 엄마가 걱정하는데 나가라고 해? 이게 말이 돼?” 지금껏 말없이 지켜보던 박정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엔 방금 그 여의사... 고전 침술법을 쓴 것 같았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방법인데, 국내에서도 몇몇 은둔 가문만 다루는 방식이지. 그만큼 함부로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송연희와 허지유를 쳐다봤다. “그 여자가 무슨 치료를 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소란 피웠다고? 태진이가 자기 몸 갖고 장난칠 사람인 줄 알아? 조용히 쫓겨난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해.” 그리고 정시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