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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한편, 비상구. 두 주정뱅이는 여전히 허소원에게 집적댔다. 허소원은 점점 다가오는 사내들을 피해 곧장 입구로 걸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예쁜아, 어디 가?” 그중 한 남자가 겁도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허소원은 싸늘한 눈빛으로 다리를 들어 남자의 중요 부위를 힘껏 걷어찼다. “악!” 곧이어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옆에 있던 일행도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님, 괜찮으세요?” 남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 눈을 부라리며 버럭 외쳤다. “이 년이! 감히 날 건드리다니? 오냐오냐했더니 기어오르네? 당장 저 여자를 끌고 와. 오늘 밤 본때를 보여줄 거야.” “네!” 일행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허소원을 붙잡으려고 했다. 허소원은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 지경이 된 이상 폭력은 불가피할 듯싶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생각했다. 업어치기를 할지 아니면 약 가루를 뿌릴지 고민이었다. 몸에 지닌 호신용 약만 하더라도 사내를 쓰러뜨리기 충분했다. 상대방의 마수가 점점 가까워지는 순간 단단한 팔뚝이 빼꼼 열린 문틈 사이로 불쑥 튀어나와 남자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뼈마디가 선명한 손가락은 하얗고 길쭉하며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자그마한 점이 있는데 묘하게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낯익은 손을 보자 허소원은 눈썹을 까딱했다. 그러나 미처 떠올리기도 전에 귓가에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악! 아파...” 곧이어 문이 뻥 열리며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검은색 정장 바지 속 곧게 뻗은 다리,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는 몸매, 근육질 상체는 심플한 검은 셔츠에 가려졌다. 비록 흔한 옷차림에 불과했지만 착용한 사람에 따라 고귀하고 성적인 매력이 부각되었다. 허소원의 시선이 준수한 얼굴로 천천히 향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오뚝한 콧날, 날카로운 눈동자는 한 마리의 매를 연상케 했다. 자신을 향한 새까만 눈동자는 마치 어두컴컴한 심연 같았고 뼛속까지 차가운 한기는 물론 아슬아슬한 느낌마저 들었다. 허소원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심지어 술에 취해 환각이라도 본 건 아닌지 싶었다. 어쩐지 점이 낯익다고 했더니, 오랜만에 다시 만난 전남편 박태진이었다. 그녀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 이런 상황에서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남자를 마주치게 될 줄이야! 한편, 박태진도 허소원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몇 년 사이 성숙미가 더해졌고 분위기도 한층 우아하고 요염해졌다. 얌전하고 착한 옛날 모습과 달리 강렬하고 도발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 단지 존재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남자들이 가만히 두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박태진의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고 이를 악물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허소원!” 벼락같은 고함에 허소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주정뱅이 따위 안중에도 없었고 본능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박태진의 반응이 훨씬 더 빨랐다. 그는 사내를 재빨리 밀어내고 성큼성큼 걸어가서 허소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팔을 덥석 붙잡고 앞으로 끌어당겼다. 음침한 목소리는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왜 도망치는 거야?” 허소원도 이유는 몰랐다. 단지 머릿속이 뒤죽박죽 해서 눈앞의 남자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거 놔.” 그녀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예쁘장한 얼굴에는 온통 무관심과 소원함 뿐이었다. 과거의 부드럽고 다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180도 변한 그녀를 보자 박태진은 이루 형언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어렵게 마주쳤는데 이대로 놓아줄 리 있겠는가? 오히려 손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갔다. 계단 입구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탓에 자칫 잘못하면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위험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허소원 때문에 박태진은 그녀를 구석으로 끌어당기며 짜증 섞인 말투로 밖에 있는 정시훈을 향해 외쳤다. “정 비서, 이 두 쓰레기를 당장 처리해.” 정시훈은 잽싸게 뛰어와 경호원과 함께 주정뱅이들을 끌고 갔다. 그리고 떠나기 전 조용히 눈길을 돌렸다. 이내 깜짝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세상에! 진짜 사모님이었다니? 인사조차 없이 이혼 합의서만 남기고 무려 6년 동안 사라진 여자였다. 정시훈은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피한 다음 문까지 꼭 닫아주었다. 허소원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기분이 착잡했다. 특히 바짝 붙어 있는 지금, 남자다운 숨결이 그녀를 덮치자 한때 가장 좋아하고 그리워했던 향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6년이 흘러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거로 여겼지만 막상 마주치고 나니 숨이 턱 막혔다. 이렇게 못날 수가! 이혼까지 한 마당에 두려워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애써 감정을 추스른 다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내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나? 박태진 씨.” 무심하고 낯선 호칭이 들려오자 박태진은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몰라서 물어?” 어두운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고, 온몸으로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허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표정만큼은 차분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방금 도와준 것 때문에? 그래, 고마워. 이제 비켜주시지? 친구가 기다리고 있거든.” 딱딱한 말투와 소원한 태도는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는 듯싶었고,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박태진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할 말이 그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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