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오라버니, 제가 기억하기로 언니 생신이 오일 뒤였던 것 같습니다.” 강청연이 미소를 머금고 조심스레 물었다. “어, 그런가?” 구상철은 그 자리에서 말문이 막혀 어쩔 줄 몰랐다. 한때 청월루의 명무였던 은화영은 해마다 생신이면 성대한 잔치를 벌였고 권신들이 앞다투어 진귀한 선물을 바쳤으니 연제국 경성 사람치고 그녀의 생일을 모르는 이가 없을 터였다. 은화영이 재빨리 분위기를 수습했다. “어머, 역시 공주마마는 기억력도 남다르시군요. 맞아요, 다음 달 초하루가 제 생일이랍니다.” 강청연은 구상철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얻고자 마음을 굳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피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선수를 쳐 주도권을 쥐는 편이 훨씬 나았다. “오일 뒤 생신 잔치는 제가 맡겠습니다. 오라버니께서는 화영 언니와 함께 제 침궁으로 오시지요. 우리 셋이서 조용히 즐기면 될 듯합니다.” “그야 고맙지요. 전 요즘 몸에 아이를 품은 몸이라 대장군을 모시는 일은 어려울 듯하니 공주마마가 맡아 주셔야겠네요.” 은화영의 말엔 노골적인 암시가 실려 있었다. 구상철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청연을 바라보자 강청연은 달콤한 미소를 머금고 부드럽게 화답했다. “오라버니께선 평생을 연제국을 위해 헌신해 오셨고 한때 저를 누구보다 아껴주셨지요. 제가 무연 공주로서 모시는 건 당연히 제 몫이라 여기 옵니다.” 그 말에 구상철은 흡족해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우리 청연이가 이리도 마음 써주니 그저 기쁘기 그지없구나. 그럼 그리 알고 잔칫상은 내가 따로 마련해 보내겠네. 청연이는 몸만 나와 주면 되는 것이야.” “오라버니, 지난번 청월루에서처럼 절 술로 혼절시키시는 일은 없게 해 주세요. 이번엔 정겹게 말도 나눠야 하지 않겠어요?” 강청연이 넌지시 말했지만 속으론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구상철이 또다시 무슨 수를 쓸지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이미 아이를 품은 몸이었으니 술 한 모금도 삼가야 했다. 구상철은 뻔뻔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청연이가 이토록 자청하는데 어찌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