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개인병원. 환자를 진료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성유리는 서랍 속의 휴대폰이 아무리 진동해도 전화를 받을 시간이 없었다. 진무열이 갑자기 고열이 나서 아침 일찍 성유리에게 전화를 해 반나절 휴가를 신청했다. 개인병원이 이제 막 오픈한 상태라 며칠은 환자가 상대적으로 많았기에 일찍부터 개인병원에 와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진무열이 지친 몸을 이끌고 개인병원에 나타났다. 성유리는 그를 올려다보며 약간 놀랐다. “무열 씨,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혼자서 환자 보는 게 걱정돼서 일찍 왔어요.” “몸은 괜찮아요?” 진무열의 초췌한 얼굴을 본 성유리는 눈에 걱정이 스쳤다. “괜찮아요. 약 먹어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흰 가운으로 갈아입은 진무열은 얼른 일에 몰두했다. 점심을 먹을 때에야 성유리는 아침에 박지훈이 전화를 걸어온 것을 확인했다. 박지훈에게 다시 전화를 걸려고 할 때 따로 갖고 있던 개인 번호로 모르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전부터 알고 지내던 고객이 옥기를 수리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고객과 상담을 마친 성유리는 박지훈이 전화한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오후, 고객이 옥기를 진미연의 손에 전달하자 진미연은 물건을 받은 후 사진을 성유리에게 보냈다. 성유리는 신분을 공개하기 불편했기 때문에 옥기 고객 대부분은 진미연을 통해 접했다. 오래전부터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이렇게 일해왔기 때문에 많은 고객들은 성유리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성유리는 밤 8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쳤다. 개인병원 문을 잠그려는 순간 익숙한 실루엣이 마이바흐 차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성유리는 멈칫했다. 머릿속에는 어젯밤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만 가득했다. 성유리가 제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자 박지훈이 다가오더니 그녀 앞에 걸음을 멈췄다. “아침에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 성유리는 그제야 그 일이 떠올랐다. “오늘 너무 바빴어요. 나중에 전화하려다가 일이 생겨 전화를 못 했어요.” 성유리의 목소리는 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