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9화

박여진의 눈가가 더욱 붉어져 고개를 끄덕인 뒤,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박태호는 한 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호텔에 데려다준 뒤, 곧장 집으로 향했다. 마침 저녁이라 아버지인 박호섭도 돌아와 있었다. “아버지.” 박태호가 급히 다가가 부르자 박호섭은 손을 들어 아들의 등을 두드렸다. “회사 일, 요즘 네가 잘 처리하고 있더구나. 서류도 다 봤는데 아주 괜찮더라.” 아버지의 칭찬에 박태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따라 올라가다가 결국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오늘 예전 신문을 봤어요. 여진이 친부모님에 관한 기사요. 아버지, 여진이 아버지하고 동문이셨죠? 왜 여태껏 말씀 안 하셨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친하셨으니까... 그래서 여진이를 입양하신 건가요?” 박호섭은 뜻밖의 질문에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침묵이 박태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혹시 기억하세요? 여진이 부모님 사고가 정말 단순한 교통사고였나요? 아니면... 누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닌가요? 만약 단서가 있다면 말씀만 해 주세요. 지금은 제가 능력이 있으니 반드시 복수할 수 있어요.” 박태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호섭이 손을 들어 아들의 입을 막았다. “두 사람이 당한 사고는 모두 불의의 사고였고 경찰도 그렇게 결론 내렸다. 그런데 네가 왜 갑자기 이걸 캐묻는 거냐? 쓸데없이 신경 쓰지 말고 회사 일에 전념해. 그게 네가 할 일이야.” “하지만 당시 기사에 나온 가해자 가족이 말했잖아요. 평소엔 술 한 방울도 안 마셨는데 왜 하필 그날 술을 마시고 누굴 친 거냐고요. 전 그게 누군가의 사주 같은...” “그만!” 박호섭의 고함을 지르다가 잔뜩 굳어버린 아들을 보자 다시 등을 토닥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네가 이걸 파헤친다고 달라질 게 없어. 오히려 여진이만 또다시 고통 속에 빠질 뿐이야. 여진이는 지금 잘 살고 있고 너도 잘해 주고 있잖아. 그걸로 충분하니 더 이상은 생각하지 마.” 박태호는 더 묻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