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나는 박지한의 시선에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꽉 맞잡았다.
임세라는 그런 내 행동을 보더니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웃었다.
“왜, 갑자기 막 심장이 두근거리고 쑥스러워? 우리 시연이도 신랑 앞에서는 별수 없는 여자구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건 쑥스러움이 아닌 두려움이었다. 나는 지금 박지한이 날 알아볼까 봐 두려운 거다.
“근데 시연아, 이 드레스 릴리안이 디자인한 거 맞지? 스케줄 꽉 차서 내년 말까지는 아무런 주문도 못 받는다 그랬는데 역시 박 대표가 얘기하면 다르구나?”
임세라는 내 드레스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며칠 전 온시연이 집으로 도착한 웨딩드레스를 꺼냈을 때 나도 똑같이 감탄했었으니까.
머메이드 스타일의 이 웨딩드레스는 라인이 예쁜 나에게 완전히 찰떡이었다.
아무리 쌍둥이라 해도 몸매까지 똑같을 수는 없기에 같은 옷이라도 핏이 미세하게 다른데 이 드레스는 꼭 언니가 아닌 나를 위해 주문 제작한 드레스처럼 완벽한 내 옷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겠지만.
잠시 후.
온시연의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쿵쿵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하며 두 손을 꽉 맞잡았다.
달칵.
문이 열리고 박지한이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박지한은 조금 짙은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충 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정확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건 절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온시연의 친구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그중 눈치 없는 한 명이 소리 내어 물었다.
“박 대표님, 눈 괜찮으신 거였어요?”
그 말에 박지한이 시선을 돌리며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들러리들은 겁먹은 얼굴로 슬며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나는 숨을 꾹 참은 채로 다시 내게로 돌아온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5초 정도 지났을까, 박지한이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더니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모르는 사람 보는 듯한 그 눈빛은 뭐야?”
그 말에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박지한의 뒤에 있던 윤준영은 분위기를 띄우려는지 가까이 다가오며 해사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제수씨야. 우리 지한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계속 뭐 씹은 얼굴이었는데 신부를 보자마자 그대로 무장해제 되어버리네?”
나는 윤준영의 얼굴을 보며 긴장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윤준영은 박지한과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이고 나와도 꽤 편한 사이였다.
그래서 박지한이 나에게 시비를 걸 때면 늘 내 편을 들어주며 옆에서 말려주곤 했었다. 물론 한번도 성공한 적은 없지만.
“그럼 이제 신부를 데려가도 되나요?”
윤준영의 한마디에 들러리들은 얼른 나의 웨딩드레스 밑단을 잡아주며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나는 허둥지둥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돌리다 마침 박지한과 눈이 딱하고 마주쳐버렸다.
미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까부터 줄곧 나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박지한은 내가 고개를 다시 돌려버리기 전에 두어 걸음 성큼 가까이 다가오더니 번쩍하고 나를 품에 안아 들었다.
“이제 갈까?”
나는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문을 나서고 계단을 내려가야 할 때 박지한은 몸을 더 가까이 붙여오더니 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계단 내려갈 거니까 꽉 잡아.”
나는 멍한 얼굴로 가만히 있다가 요구대로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계단 아래에는 엄마와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박지한의 눈이 멀쩡한 것에 꽤 놀랐을 텐데도 일말의 동요도 없이 그저 인사한 미소만 지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러지 못했고 놀란 표정을 다 드러내며 뚫어지게 박지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빠가 옆구리를 살짝 치고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며 손수건을 꺼내 있지도 않은 눈물을 닦아냈다.
부모님으로부터의 당부가 끝이 난 후 박지한은 다시금 나를 안으며 차량 쪽으로 향했다.
나는 뒷좌석에 앉자마자 그제야 결혼이 실감 나는 듯해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며 손바닥에 땀도 났다.
박지한은 그런 나를 보더니 손수건을 꺼내 직접 나의 두 손을 닦아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내가 계속 네 곁에 있을 테니까.”
그게 더 무서운 말이라는 걸 아마 박지한은 모를 것이다.
박지한이 차에 올라탄 것까지 확인한 기사는 출발하겠다는 신호와 함께 시동을 켰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갑자기 뛰어오더니 차창을 똑똑 두드렸다.
“왜요, 엄마?”
“우리 딸 얼굴 한 번만 더 보려고.”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끌어안더니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잘해. 들키면 진짜 가만두지 않을 거야.”
어지간히도 걱정됐던 모양이다.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제 됐어요. 출발해주세요.”
시동이 걸리고 차량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장으로 가는 길, 나는 정면만 응시한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지한에게 들킬까 봐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더 많게는 온시연과 자주 만났던 박지한의 어머니에게 들켜버릴까 봐 무서웠다.
그리고 무사히 모두를 속인다고 해도 마음이 그다지 편치만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손을 꼼지락거리다 고개를 아주 살짝 돌려 박지한을 바라보았다. 언니 대신이기는 하지만 식장에 들어가고 이 남자와 함께 약속하는 건 나이기에 자꾸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왜 이렇게 경직됐어?”
박지한의 말에 나는 버벅거리며 답변했다.
“아, 아닌데. 나 긴장 안 했는데.”
박지한은 피식 웃더니 조금 차가운 내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또 대화가 이어질까 봐 가만히 있었다.
식장 앞.
박지한은 차에서 먼저 내린 후 직접 차 문을 열고 나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손을 가볍게 잡으며 살포시 차량에서 내렸다.
식장 밖은 이미 사람들도 가득했고 다들 눈을 반짝이며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 시선 신경 쓰지 말고 내 손만 잡고 나만 따라와.”
의지할 곳이 박지한밖에 없어서 그런지 그의 한 마디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 덕에 신부 입장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마지막 순서인 신랑 신부 행진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식이 진행되는 내내 평온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있는 나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어쩜 저렇게 참하고 예쁠까요? 우리 딸들도 저렇게 컸으면 좋으련만.”
“그러니까요. 박 대표랑 아주 천생연분이에요. 그런데... 온씨 집안의 둘째는 어디 있죠?”
“사모님한테 듣기로 친구들이랑 놀러 갔대요. 그 집 둘째는 어릴 때도 말괄량이더니 커서도 똑같네요.”
왜 꼭 누군가와 비교하고 한쪽을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인 건지, 나는 상처받은 마음을 애써 숨기며 덤덤한 척을 했다.
“배고프지? 뭐 좀 먹을래?”
그때 박지한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확실히 아침부터 굶은 채로 준비해서 그런지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타이밍에 먹는 건 좀...”
내가 하객들을 슬쩍 가리키며 말하자 박지한이 피식 웃었다.
“하객들 눈치를 왜 봐. 따라와.”
박지한은 내 손을 잡고 사람들이 거의 없는 복도 끝쪽의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나를 혼자 둔 채 다시 방을 나갔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기도 했고 또 발도 아파 와 나는 발목을 주무르다가 아예 신발을 확 벗어 던졌다.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을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발 이곳저곳이 많이도 까져있었다.
“아, 편하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던진 채로 편히 쉬고 있던 그때 문이 다시 열리며 박지한이 핑거푸드를 들고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하이힐로 향해 있는 걸 본 나는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와, 왔어?”
박지한은 나의 뻣뻣한 움직임에 미소를 짓더니 다시 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내가 맨발을 숨기려고 하기도 전에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내 발을 확 잡아당겼다.
“뭐 하는...!”
나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발을 빼기 위해 버둥거렸다.
하지만 박지헌은 꽉 잡은 채로 놓아주지 않았고 주머니에서 반창고를 꺼내 들며 까진 곳에 붙여주기 시작했다.
다 붙여주고 난 뒤에는 갑자기 등 뒤에서 푹신해 보이는 슬리퍼를 꺼내며 나에게 신겨주었다.
“사이즈 괜찮은지 봐봐.”
박지한은 내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불편한 거 있으면 빨리 얘기해.”
나는 조금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헌은 내가 아무렇게나 벗어둔 하이힐을 가지런히 정리해준 후 이번에는 포크로 음식을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고마워.”
“앞으로는 고맙다는 말 안 해도 돼. 그게 뭐든 내가 너한테 하는 건 당연한 걸 테니까.”
나는 그 말에 순간 박지한이 뭘 잘 못 먹은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말투도 그렇고 눈빛도 그렇고 지나치게 다정했기 때문이다.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박지한이 다정하게 굴면 굴수록 나는 편해질 테니까.
박지한은 내가 배불리 다 먹고 나서야 다시 나를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
편한 슬리퍼로 갈아신으니 이제야 진실한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았다.
폭풍 같던 결혼식이 끝이 난 후, 나는 시댁 식구들의 따뜻한 눈빛을 받으며 박지한과 함께 그의 별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