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화
“왜 안 돼?”
하준은 갑자기 여름의 어깨를 와락 움켜잡더니 벽에 밀어 붙였다. 눈에서는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당신이 매력적인 여자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전에는 내가 당신을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 같아.”
그러면서 탐욕스럽게 여름의 붉은 입술을 탐닉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름은 얼굴을 홱 돌리면서 하준의 입술을 피했다.
하준의 입술은 여름의 뺨에 닿았다. 여름의 몸에서 은은히 풍겨나는 향기를 들이마시며 하준은 미련이 남는 듯 몸을 뗐다.
“지난 주에 어떻게 당신 수하들을 시켜서 날 구속했는지, 어떻게 날 압박해서 사인하게 만들었는지, 얼마나 나에게 냉정하게 굴었었던지 다 잊어버렸나 봐?”
여름은 슬픈 눈을 하고 하준을 바라보았다.
“그날 당신이 차에서 날 안아 내렸을 때 잠들어 있지 않았어. 꿈을 꾸는 것만 같아서 깨고 싶지 않았지. 어쩌면 우리가 다시 함께 하게 될 실낱 같은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했어. 하지만 다음날 당신은 사람들을 데리고 내 집에 쳐들어와 이혼을 요구했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눈곱만큼도 남겨주지 않고 말이야.”
여름은 마지막 말을 할 때 살짝 울먹였지만 여전히 강한 척하고 버텼다.
하준의 몸이 굳어졌다. 무슨 끈으로 몸이 묶인 듯 꼼짝할 수 없었다.
“당신….”
여름은 하준을 와락 밀쳤다.
“그러더니 백지안과 시험관 아기를 하겠다고 나타나더군. 백지안과 살기로 결심했다면 대체 왜 잘 붙어있지 못하고 번번이 여기 와서 나에게 상처 주는 거야? 나와 백지안 사이에서 당신은 언제나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내게 상처 주는 쪽을 택했다고. 날 원한다면서도 세 사람 사이에서 언제나 나만 양보하면서 화목한 당신들 세 식구, 네 식구 뒤에서 바라만 보라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 질투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 그렇다고 내가 백지안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줬다면 당장 내게 와서 날 하잖아.”
그러더니 여름은 갑자기 주저앉아 실성한 듯 울었다.
그런 여름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사실 자신이 늘 여름에게 불공평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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