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지금 허소원은 그들 사이에 끼어들 생각조차 없었다. 그래서 박태진에게도 더는 쓸데없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필요한 업무적 대화만 간단히 주고받았고 나머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녀의 싸늘한 태도는 박태진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 명의가 좀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겼을 뿐이다. 적막한 분위기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허소원은 마지막 침을 뽑은 뒤, 차분하게 그에게 말했다. “복용하는 약과 바르는 약은 전과 동일하게 해주시고요. 그리고 저는 치료 도중 방해받는 걸 싫어합니다. 오늘 같은 일, 다시는 없었으면 합니다. 치료 중 실수가 생겨서 심각한 결과가 나올 경우, 전 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박태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허소원은 더는 말을 잇지 않고 말끔히 정리한 뒤, 바로 방을 나섰다. 한편, 박태진도 옷을 갈아입고 나와 정시훈의 부축을 받아 거실로 향했다. 밖에 나오니 박정훈과 송연희, 허지유는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허소원은 그들을 힐끔 바라봤지만 인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조용히 지나치고 나가려던 순간, 허지유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길을 막으며 선뜻 말을 걸었다. 허소원은 짜증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고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라도 남으셨어요?” 허지유는 그녀의 날 선 말투에 잠시 움찔했지만 애써 감정을 누르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박정훈 부부가 보고 있었고 박태진에게 나쁜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제가 선생님이 그 유명한 맨디 선생님이신 줄은 몰랐어요. 무례하게 굴었던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태진 오빠의 치료 잘 부탁드릴게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 주세요.” 겉으론 공손한 말과 미소였지만 그 모든 태도는 누가 봐도 ‘가식’ 그 자체였다. 허소원은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사과는 핑계일 뿐 진짜 목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