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방 안에 물건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박성준이 시선을 돌리자 이불 틈으로 희고 가느다란 팔이 쏙 들어갔다.
탁자 위에는 그녀의 하얀 블루투스 이어폰이 놓여 있었다.
그제야 그는 아까 그녀가 왜 대답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구나.’
뜨거운 물줄기가 단단한 근육 위로 흘러내렸다.
박성준은 샤워 부스 너머로 세면대 위에 놓인 각종 병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시연이가 저기 서 있었어.’
목이 바싹 말랐다.
목젖이 위아래도 움직였고 그는 무심결에 혀로 마른 입술을 쓸었다.
욕실 가득 동백꽃 향기가 퍼졌다.
‘동백꽃처럼 성스러운...’
박성준은 속으로 자신을 질책하며 물 온도를 낮췄다.
안시연은 박성준이 아직 나오지 않은 틈을 타 이불을 몸 아래로 단단히 눌렀다.
졸음이 쏟아졌던 그녀는 박성준이 나왔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이불을 꼭 끌어안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 실외 온도가 낮아 요가 수업이 실내로 변경되었다.
최미숙이 1층 피트니스룸에 빈 공간을 마련해 주어 요가 매트와 필라테스 기구도 이미 세팅이 끝난 상태였다.
안시연은 요가복을 입은 채 코치의 지도 아래 동작을 연습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박성준이 들어왔다.
그는 운동용 물병과 수건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닿았다.
순간 어젯밤의 장면이 떠오르며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메리 코치는 박성준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도련님, 좋은 아침입니다.”
박성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러닝머신을 켰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공간에서 완전히 남처럼 운동을 시작했다.
한 사람은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흘리며 불필요하게 솟구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필라테스 기구에 몸을 맡기고 코치의 구령에 맞춰 이를 악물고 동작을 수행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어젯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주 낯선 존재가 되었다.
오전에 학교 수업이 있는 그녀는 서둘러 준비해야 했다.
다행히 어젯밤 박성준이 장지현의 수업을 대신 맡겠다고 해서 그녀는 기말고사 준비와